술 '취하던' 세계인, 웰빙 '취하자'…펍·이자카야 줄도산, 와인 농가 비명

술 '취하던' 세계인, 웰빙 '취하자'…펍·이자카야 줄도산, 와인 농가 비명

고지운 기자
2026.08.16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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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랑방'이던 영국 펍(Pub)이 문을 닫고 일본 밤거리를 밝히던 이자카야가 줄도산하고 있다. 와인 종주국 프랑스에서는 팔리지 않아 넘쳐나는 와인을 산업용 에탄올로 끓여내고 포도밭을 갈아엎는 지경이다. 음주 인구 감소가 주종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 주류 생태계를 뒤흔드는 현장이다.

사케를 잔으로 주문하면 종업원이 눈앞에서 직접 따라준다. /사진= 윤슬빈 기자
사케를 잔으로 주문하면 종업원이 눈앞에서 직접 따라준다. /사진= 윤슬빈 기자

2차·3차 회식 사라진 밤거리… 줄도산 내몰린 '이자카야'

일본의 선술집 '이자카야'는 역사상 가장 매서운 한파를 맞았다. 지난 7월 도쿄상공리서치(TSR)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일본 이자카야 도산 건수는 총 118건이다. 1989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후 상반기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치다. 도산 원인으로는 '판매 부진'이 105건으로 가장 많았다.

보고서는 술자리가 줄어드는 등 술 소비 감소가 선술집의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도쿄에서 이자카야 '쿠라노스케'를 운영하는 마쓰바라 가즈노리 역시 지난 11일(현지시간) 닛케이 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일본 회식 문화에서 빠질 수 없었던 2차, 3차 문화가 지금은 크게 줄어 심야 시간대 매출이 급감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 국세청(NTA) 집계 결과 성인 1인당 연간 술 소비량은 1995년 100ℓ에서 2020년 75ℓ로 25%나 감소했다. 주세 수입이 급감하자 일본 정부가 2022년 20~39세 청년을 대상으로 술을 마시라고 독려하는 차원에서 '사케 비바!(Sake Viva!)' 캠페인까지 벌였지만 술 소비량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분위기다.

펍 말고 카페로…'논알콜' 커피 레이브가 새 사교장으로

[런던=AP/뉴시스]영국 정부가 코로나19 봉쇄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면서 12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런던 소호 주점 밖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봉쇄 완화에 따라  미용실, 상점, 체육관, 야외 술집 및 식당 등이 영업을 재개했다. 2021.04.13. /AP=뉴시스
[런던=AP/뉴시스]영국 정부가 코로나19 봉쇄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면서 12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런던 소호 주점 밖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봉쇄 완화에 따라 미용실, 상점, 체육관, 야외 술집 및 식당 등이 영업을 재개했다. 2021.04.13. /AP=뉴시스

펍의 본고장 영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맥주·펍협회(BBPA)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세 달간 영국 전역에서 161개의 펍이 영업을 종료했다. 하루 평균 두 곳 정도가 문을 닫은 것이다. BBPA는 영국의 펍이 2000년 6만800개에서 2025년 4만4650개로 급격히 줄었다고 전했다.

설상가상 행정 당국의 규제는 펍의 정체성까지 위협할 태세다. 지난 6월 시의회는 펍 안팎에서 자리에 앉지 않고 서서 맥주를 마시는 영국의 전통 술 문화인 '버티컬 드링킹'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정책 초안을 발표했다. 버티컬 드링킹이란 펍 안팎에서 자리에 앉지 않고 서서 맥주를 마시는 영국의 전통 술 문화다. 초안에는 과도한 음주와 늦은 밤 거리 고성방가 등 주취 신고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좌석을 늘리고 테이블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권고가 담겼다. 이는 펍의 생존 위기와 맞물려 펍 문화 해체를 가속할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술을 등진 Z세대는 새로운 사교 공간을 향하고 있다. 런던 등지에서는 Z세대를 중심으로 '커피 레이브'라는 이름의 무알코올 파티 문화가 유행하고 있다. 카페를 파티 공간으로 꾸며 밤늦게 술을 마시며 노는 대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춤을 춘다. 파티 주최사인 커피컬처UK 관계자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Z세대가 새로운 사교 방식을 찾고 있다고 본다"며 "(그들은) 밤에 나가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공동체, 소통, 웰빙을 중점에 둔 경험을 더 가치 있게 느낀다"고 말했다.

포도밭 갈아엎고, 그래도 남은 와인은 끓여서 에탄올로

2019년 9월 프랑스 남부 보르도 인근 페삭의 포도밭에 와인용 포도가 수확되는 모습. 2019.09.19.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로이터=뉴스1
2019년 9월 프랑스 남부 보르도 인근 페삭의 포도밭에 와인용 포도가 수확되는 모습. 2019.09.19.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로이터=뉴스1

최대 와인 생산국이자 주요 소비국인 프랑스에서는 와인 소비 감소로 공급 과잉이 심해지면서 포도밭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아니 제네바르 프랑스 농업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와인 농가 구조조정을 위한 1억3000만유로(약 2120억원) 규모의 기금을 올해와 내년에 걸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수요 감소에 대응해 와인 농가의 포도밭을 갈아엎고 헥타르당 4000유로의 보조금을 농가에 지급하기 위해서다.

와인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에서 공급의 균형을 맞춰 가격이 폭락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국제와인기구(OIV)에 따르면 프랑스의 와인 소비량은 2010년 29.5억ℓ에서 2025년 22억ℓ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이에 와인 농가들은 수입 감소로 인한 생활고를 호소해 왔다. 한 와인 전문지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은행 크레디 아그리콜은 프랑스 대표 와인 산지인 보르도 소재 와인 농가 4곳 중 1곳이 채무 재조정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은 넘쳐나는 와인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공급 과잉 해소에 나섰다. 아일랜드 매체 아이리시 타임스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4월 4000만유로의 긴급 자금을 투입해 프랑스 와인 농가에서 생산한 와인을 사들였다. 이렇게 사들인 와인은 에탄올 또는 산업용 알코올로 정제해 제약 및 화장품 산업 등에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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