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자전거 르네상스/ 내 자전거 지키기
#. 지난 4월 부산에서 자전거 절도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한 아파트에 설치된 CCTV를 보다가 혀를 찼다. 절도 용의자가 초등학교 4~5학년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인데다 범죄 수법이 성인과 비교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얼굴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눌러쓰고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장갑을 착용했다 .
#. 5월 청주에서는 68세의 노인이 절도혐의로 구속됐다. 검거 당시 이 노인의 집에는 4대의 오토바이와 27대의 자전거가 있었다. 노인은 길거리에 버려진 자전거를 가져왔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도난신고 물품이 포함돼 있어 경찰은 이 물건들을 모두 훔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자전거 도난사고가 심각한 수준이다. 한 방송사에서 서울의 중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자전거 도난을 경험한 학생이 140명으로 46.7%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을 정도다. 2명 중 1명은 자전거 도둑을 맞은 셈이다.
주로 10~20대 젊은층에서 발생했던 자전거 절도범의 연령폭도 크게 늘었다. 초등학생부터 일흔에 가까운 노인에 이르기까지 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전문 털이범과 전문 조직이 생기면서 피해금액도 상당하다. 자전거의 메카로 알려진 창원시에서는 이달 초 자전거 7대와 바퀴 18개 등 4000만원 상당을 훔친 고등학생 8명이 붙잡혔다. 2월에는 400만원에 이르는 고급 자전거 등 20여대를 훔친 30대가 마산에서 구속되기도 했다.
자전거 절도에 관한 한 안전지대가 없다는 이야기가 정확한 듯하다. 도둑 없기로 유명한 제주에서 조차 매달 자전거 도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경이다. 한 지방일간지는 자전거 절도사건이 많이 발생한 해당 자치단체를 빗대 '자전거 盜市'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자전거 절도범은 상대가 누구건 봐주지 않는다. 한 지방경찰청 경찰도 청사 건물에 세운 자전거를 도둑맞았고, 한 지검 검사장도 관사 아파트 앞에서 자전거를 도난당했다.
2차 대전 직후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자전거 도둑>에서 주인공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훔쳐야 했다면, 2009년 한국의 자전거 도둑은 절도하기 손쉬운 물건이라는 간단한 이유만 있을 뿐이다.

◆내 눈을 벗어나는 순간 내 자전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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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수 27만여명인 대표적인 자전거 온라인 커뮤니티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하 자출사)'에는 매일 많으면 수십건의 자전거 도난피해와 관련된 글이 올라온다. 21대의 자전거를 잃어버린 회원부터, 하루에 2대를 동시에 잃어버린 회원까지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게시판을 채운다.
N****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누리꾼은 "같은 모델로만 6개월새 3대를 도난당했다"면서 "어디 가서 따질 수도 없고 눈물만 난다"고 토로했다.
잠금장치가 된 부분을 피해 부품만 챙기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자전거에 장착된 속도계를 훔치는 경우, 안장만 빼가는 경우, 바퀴만 놔두고 가져가는 경우, 심지어 체인을 풀어가며 뒷바퀴만 골라 절도하는 경우까지 사례가 다양하다.
감시카메라가 있어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회원들이 올린 CCTV 영상에는 불과 수초 만에 자신의 자전거인양 훔쳐가는 모습을 여러개 목격할 수 있다.
'0.7초면 끝난다'는 말이 사실인 셈이다. 유압식 절단기만 있으면 큰 힘을 들이지 않더라도 체인을 한순간에 끊을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CCTV를 통해 얼굴이 노출되더라도 범인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 살인 등 강력범죄수사에 쫒기다 보면 자전거 도난 같은 단순절도사건에 수사력을 쏟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다. 사건을 접수해봐야 경찰관 한명이 주변 탐문수사를 하는 정도가 기대할 만한 수준이다.
설령 범인을 잡는다 해도 처벌이 간단하지 않다. 아직도 자전거 절도범의 상당수가 어린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피의자가 만 10세 미만인 경우 처벌할 수 없으며, 만 14세 미만이더라도 소년법에 따라 보호처분만 내릴 수 있다. 만 19세 미만이면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전과가 없거나 범죄사실이 무겁지 않다면 역시 보호처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전거 범죄 관련 수사를 주로 담당한 김형준 광진경찰서 경장은 "자전거 절도 피의자 중 미성년자가 많고 피해자 역시 처벌하기를 원치 않는 경우가 많아 형법 적용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도난 자전거 이렇게 찾아라
자전거를 도난당했을 경우 다시 찾기가 어려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귀찮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설령 신고했다 하더라도 증거가 없다면 사실상 찾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경찰이 자전거를 검문하는 것도 쉽지 않고 소유 확인도 만만치 않다.
피해규모를 감안하면 경찰력 투입도 한계가 있다. 경찰 중에는 자신의 자전거도 절도를 당했지만 절도범 찾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도난 자전거를 찾은 피해자들은 어떤 방법을 이용했을까? 김 경장은 "차대번호(시리얼 넘버) 사진을 남겨놔 범인을 검거한 사례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용의자를 추적하기까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무혐의 처분을 내릴 때가 있는데 이때 차대번호를 기록해 두면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잘 보이는 곳과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이름을 써놓은 경우도 자전거 도난에 대비 하는 자세다. 이름이 적힌 자전거는 범죄 예방에도 효과적일 뿐 아니라 절도범이 미쳐 지우지 못한 이름은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도범을 만날 수 없다면 이 같은 노력도 허사다. 따라서 도난된 자전거를 찾기 위해서는 바이크셀이나 와일드바이크, 중고나라 등 자전거 중고 거래장터를 끈기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가 자전거는 해체해서 장물로 처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출사에서는 중고장터를 통해 절도범을 추적한 사연이 종종 올라온다. 중고장터에 올라온 의심이 가는 매물을 구입하겠다고 연락해 직접 경찰과 함께 대면을 하거나 연락처를 추적해 잡는 경우다. 미끼용으로 도난당한 자전거를 구입하겠다고 글을 올려 절도범을 거래 현장에서 직접 잡는 경우도 있다.
한편 중고장터를 이용하다가 범죄를 저지는 상황도 발생한다. 장물을 구입한 경우다. 장물임을 의심할만한 사유가 있음에도 장물을 취득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단순 절도죄가 6년 이하의 징역에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에 비해 형량이 무겁다.
김 경장은 "장물을 구입한 사람이 훔친 사람보다 더 무거운 벌을 받을 수 있다"면서 "시세보다 현저하게 싼 물건은 구입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조언했다.
◆각자 알아서 관리해라?
자전거 르네상스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붐이 조성되고 있지만 정작 자전거 도난 사고는 여전히 개인에게 국한된 문제로 남을 전망이다. 지난해 국회에 발의된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에 따르면 자전거 도난 방지책은 사실상 자치단체에 일임한 상황이다.
법률안에는 시도지사가 시장ㆍ군수ㆍ구청장에게 자전거 등록 정보를 공유하고 통합 관리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지만 등록 의무제가 아니기 때문에 도난 방지를 위한 실효성에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자전거 이용자나 관계자들은 일본의 경우처럼 자전거 등록제를 의무화해야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전거의 가격이 높아지고 자전거 절도가 우려할 만한 수준임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친환경이라는 구호만 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전거 등록제는 주민등록번호처럼 자전거 고유의 번호를 국가에서 관리하는 제도다.
유명 자전거 온라인 모임에서는 자체적으로 자전거 등록을 실시하고 있다. 주로 수백만원대 고급 자전거를 타는 자출족을 중심으로 '차대번호 인증사진'을 등록한다. 여기에 등록된 자전거는 앞서 언급한대로 도난 이후에도 결정적인 증거로 활용된다.
지역주민들의 요구가 높아지자 일부 자치단체에서도 자전거 등록제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3월부터 자전거 등록제를 실시해 호응을 얻고 있는 양천구는 신청자에 한해 자전거의 차대번호를 데이터베이스화해 관리하고 있다.
기존의 지자체가 시도했던 자전거 번호판이 '떼어버리면 그만'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면, 양천구의 자전거 등록제는 구에서 차대번호를 등록하고 조회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도난 시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높이고 있다.
해외라고 자전거 도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독일은 한해 40만대의 자전거가 도난당하고 있고 중국은 이보다 10배의 자전거가 절도품 신세다.
그렇지만 자전거 선진국에서는 자전거 절도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수천대의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 자전거 공용주차장을 설치하고 노인들을 배치해 일자리도 만들고 도난도 예방하는 일석이조의 공공근로 사례나, 자전거 절도와의 전쟁으로 자전거 절도범에게 경각심을 일깨운 사례 등은 참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