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칼럼] 역사 속에서 배우는 승자의 언어④
초나라 도왕의 시신 위로 엎드렸다. 오기의 온몸에 고슴도치처럼 화살이 박혔다. 덩달아 도왕의 시신도 크게 손상됐다.
<손자병법>과 함께 중국 양대 병법서로 꼽히는 <오자병법>의 저자 오기의 죽음은 석연치 않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호형호제(?)하던 초나라 귀족들이 쏜 집단 화살에 맞은 오기가 죽은 것이다. 더구나 지난 60년 생애 동안 단 한차례도 전쟁에서 패하지 않은 인물답지 않은 죽음이다. 죽음이라는 사실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우리네 인생은 눈에 보이는 사실로 가득 차 있다. 항상 눈앞에 보이는 것에 연연해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양 단정한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그 근본을 두고 있다.
나무를 보라. 뿌리는 보이지 않되 나무의 생명을 좌우한다. 보이는 것은 곧게 뻗은 줄기요, 무성한 가지다. 나무가 위로 길게 뻗으려면 그만큼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나무가 하늘을 향할수록 뿌리는 땅속으로 파고든다. 어떻게 뿌리를 놔두고 나무를 얘기할 수 있는가.
뿌리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무의 생명을 좌우한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세상을 논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편협하다. 편협함은 사물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올바른 사리판단을 막는다. 시비와 선악을 가릴 능력을 저하시킨다. 편협함을 버려야만 사물 전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이 트이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별다른 가치를 두지 않는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객관성이라는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른 것은 사실이었다. 무려 2300여년이란 세월동안 객관성을 띤 사실이 가치를 뒤로 돌리고, 윤리를 내외(內外)했다. 사실을 추종하는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두렵지 않음은 물론이었다.
‘주 너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성경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명령이다. 두려워하라는 구절에 나오는 히브리어 단어가 실제로 ‘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성경은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면 두려워하게 된다고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다. 여기에 문제가 발생한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한걸음 더 나아가 보이지도 않는데 왜 두려워한다는 말인가.
두려워할 것은 눈에 보이는 사실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엄존하고 있는 진실이다. 종교적 의미로 얘기하자면 존재에 대한 진실이다. 존재에 눈을 뜨라는 얘기다. 때론 불편한 진실에 눈을 감지 말라는 얘기와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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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두가지 눈을 갖고 있다. 단지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그 하나고, 내면의 특성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그 하나다. 후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물은 그저 주는 눈길에 제 속살을 보이지 않는다. 드러나지 않는 사물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내면의 눈을 가져야 한다.
승자는 내면의 눈을 가진 사람이다. 그 눈으로 숨어 있는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절정을 알아차리고 준비하는 자이다. 패자가 그 절정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다. 패자는 사물의 본질이 겉으로 드러난 다음에야 비로소 알아차린다. 요동을 쳐도 이미 준비를 마친 승자를 대적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한 적절한 얘기를 장자가 역시 2300년 전에 말했다.
“송나라에 대대로 헌 솜을 세탁하는 사람이 있었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손이 트지 않는 신기한 약을 만드는 비방을 갖고 있었다. 한 나그네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백금을 줄 터이니 그 비법을 팔라고 하였다. 일년에 벌이가 오륙금 밖에 되지 않았던 그로서는 한번에 백금을 벌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냉큼 팔았다.”
장자는 여기서 일단 숨을 들이쉰다. 그러나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손이 트지 않는 비방이 아니다.
“나그네는 오왕을 찾아가 약의 효과에 대해 설득을 했다. 마침 그해 월나라가 오나라를 침입하자 오나라는 그 나그네를 장군으로 삼았다. 그 나그네는 한겨울에 일부러 월나라 군사를 물위로 끌어내 싸웠다. 손이 트지 않은 약 덕분에 오나라는 월나라를 크게 이길 수 있었고, 그는 전공으로 땅과 벼슬을 하사받았다.”
위의 대화는 장자 소요유편에 나온다. 상대는 장자의 친구인 혜자다. 장자가 혜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온통 마음을 빼앗겨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헌 솜을 세탁하던 사람은 결국 몇푼의 돈에 너무 집착했기 때문에 결국 그 약이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똑같은 처방전이라도 사람마다 쓰임새가 다르고 서로 다른 효과가 나타난다. 장자가 볼 때 겉으로 드러난 세계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너무 작고 고루하다. 사물의 이치를 알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물의 전체를 파악할 줄 아는 내면의 눈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이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어린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의 말이다. 눈에 보이는 사실에 치중하는 사람들은 감추어진 세상의 진실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렷다.
진실과 사실은 사물의 안팎이다. 둘이 아니다. 밖으로 드러난 어떤 것과 그렇게 드러나게 하는 어떤 것은 결코 둘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나일 수는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진실이 숨어있다. 사실은 사물의 겉모습을 모방하는 것에 그친다. 진실은 사물의 속내인 본질을 말해준다.
사실과 진실을 나눌 때 그 첫번째 구분선상에 놓여있는 것은 ‘시간’이라는 항목이다. 사실은 과거의 영역에 속한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은 사실이다. 현재 일어나는 일은 사실일수 있고 아직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미래는 확실히 사실의 영역 밖이다. 진실은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른다. 시간에 결코 좌우되지 않으며, 스스로 지탱할 힘이 있다. 시간에 지남에 따라 사실은 산산이 부서질 수 있으나 진실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두번째 기준은 ‘전체’라는 항목이다.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은 진실이고, 부분 부분에 치중하는 것은 사실이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도움이 된다면 진실은 거짓도 함축하지만 사실과는 배치된다. 진실이 절대 거짓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예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거짓도 침묵도 진실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진실의 상대주의에 시비를 걸겠지만 말이다.
세번째 기준은 ‘가치’다. 사실에 가치가 없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드러난 것보다는 드러나지 않은 가치에 포인트를 맞출 때 사실과 진실은 구별된다. 사실에 윤리적 성격을 포함한 것이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승자가 갖고 있는 것은 진실이다. 사실이 아니다. 진실은 승자의 덕목이고, 사실은 패자의 덕목이다. 진실에는 무엇보다 따뜻함이 흐른다. 올바르다. 유용하다. 그리고 전체적이다. 승자의 덕목인 진실을 중국 진서상인의 대표격인 교귀발의 이중저울 사례에서 찾아보자.
교귀발은 일반 저울과 별도로 제작한 저울 두개를 사용했다. 별도 제작한 거울은 5% 남짓 물건을 더 얹을 수 있었다. 고객을 속이기 위해서. 천만의 말씀이다. 고객에서 더 많이 주기 위해서다.
그가 몸을 담고 있던 광성공(廣盛公)은 물건을 사들일 때는 일반 저울을 사용하여 공평한 거래를 유지했고, 물건을 팔 때는 별도로 제작한 저울을 사용했다. 손님들이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한 배려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광성공 점원조차 모르게 했다. 교귀발의 장사철학이 밴 이중저울은 결과적으로 광성공을 부흥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건을 사들이는 저울은 사실이고, 물건을 파는 저울은 진실이다. 교귀발의 이중저울은 당연히 진실이다.
18세기 청나라시절 교귀발의 이중저울의 철학은 21세기 경제학에도 도입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현실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찾는 작업이 눈에 띄고 있다. 고객감동 마케팅, 체험경제 등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
국내 프랜차이즈 브랜드에서도 상기할 일화가 있다. 우수가맹점을 시상하고, 그 보상으로 원가에 식자재공급가격을 대폭 내린 적이 있었다. 당시 최하위 가맹업소 15%도 우수업소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식자재가격을 내려줬다. 그런다고 본사가 이득을 볼 것은 없었다. 그렇게 해달라고 가맹점이 요청하지도 않았다. 단지 가맹점의 매출부진이 안타까워서였다. 물론 이는 해당직원과 사장만이 알고 있는 극비사항이었다. 표면적인 사실은 우수업소 식자재공급가 대폭인하이고, 숨겨진 진실은 하위 업체도 식자재공급가 대폭 인하였다. 그 브랜드는 2008년의 젤라또 아이스크림카페 ‘띠아모’이다.
사실과 진실은 기업의 성장과도 밀접하다. 기업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에 입각한 경제학적 사고에 머물기 때문이다. 다수의 기업들은 목표를 향해가는 가장 직접적인 길만을 고집하고 최대한 많은 경쟁에서 승리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고, 대응하기에 급급하다. 그것은 하책일 뿐이다. 사업은 숫자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사건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승자가 되기 위해 진실만 찾으라는 것은 아니다. 사실도 중요하다. 앞서 얘기했듯이 사실과 진실은 둘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나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드러난 사실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세가지 태도가 요구된다. 이기적 망상을 버리는 것이 그 하나이다. 자아도취적 태도를 버리는 것이 그 둘이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식의 자연의 이치대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그 셋이다.
서두로 돌아가야겠다. 다시 중국 전국시대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기의 시신이다. 오기는 시샘하는 초나라 귀족들의 화살을 피하려다 도왕의 시신위에 엎드려죽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오기를 총애하던 도왕은 갑자기 붕어했다. 태자는 마침 변방으로 출정 중이라 오기는 홀로 왕의 시신을 지키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분명 역사적 사실이다.
오기의 죽음 뒤에 숨어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역사가들은 말한다.
'보위에 오른 태자는 부왕의 시신에 화살을 날린 귀족들을 모조리 색출해 극형에 처했다.'
도왕의 시신 위에 쓰러진 것이 오자의 마지막 병법이었다. 병법의 대가답게 자신의 시신을 담보로 적들을 무너뜨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