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DC서 TDP 행사, "AI가 산업 구조 근본적으로 재편...관세 협상은 지켜봐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1000억달러(145조원) 돌파 가능성을 언급했다. AI(인공지능) 인프라 수요 폭증이 메모리 시장의 판을 바꾸며 사상 최대 실적 기대를 키우는 동시에 산업 전반의 변동성도 확대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최근 미국의 관세 정책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최 회장은 지난 20~21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샐러맨더 호텔에서 열린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rans-Pacific Dialogue, 이하 TPD) 2026' 행사에서 "AI가 전 세계의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 실적 전망과 관련해 "지난해 12월에는 올해 영업이익이 500억달러 이상으로 예상됐고, 지난달에는 700억달러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봤다"며 "지금 새로운 예상치는 1000억달러가 넘을 수도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179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과도한 낙관은 경계했다. 최 회장은 "정말 좋은 소식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1000억달러의 손실이 될 수도 있다"며 "변동성이 매우 크고, 신기술은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없앨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상황 변화 속도가 빨라 1년 단위 계획조차 의미가 약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AI 확산은 메모리 수요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진단도 내놨다. 최 회장은 "AI용 메모리는 공급 부족이 심각하고 올해 부족분(shortage)이 30%를 넘는다"면서 "AI 인프라가 메모리 칩을 전부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SK하이닉스의 핵심 제품인 HBM(고대역폭메모리)을 '괴물칩(monster chip)'으로 표현했다. 그는 "요즘 이 몬스터 칩이야말로 우리 회사에 진짜 큰돈을 벌어다 주는 제품"이라며 "현재 마진(이익률)은 60%가 넘는다"고 밝혔다.
AI 메모리 시장 변화는 시장의 왜곡도 가져왔다. 최 회장은 "(반도체 칩) 부족 현상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며 "HBM의 마진은 60%인데, 일반 메모리 칩의 마진은 80% 수준으로 경우에 따라 일반 칩을 파는 것이 더 이익이 되는 왜곡(distortion)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비(非) AI 영역의 위축 가능성도 제기했다. 최 회장은 "또 다른 문제는 비 AI 분야로, PC나 스마트폰 제조사들조차 예전만큼의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지 못하고 있고, 이들 중 일부는 아마도 사업을 접게 될 것"이라면서 "부족 현상이 세계 산업 구조를 완전히 다르게 바꾸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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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파급력은 에너지와 금융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최 회장은 "AI에 필요한 전력 수요를 적기에 충족하지 못할 경우 사회 전체가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며 "새로운 기술과 시스템을 통해 친환경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또 "AI 경쟁을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막대한 AI 인프라 비용을 감당할 자본과 자원이 있어야 AI 솔루션을 확보하고 경쟁의 선두 주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가 간 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최 회장은 "지금 우리가 맞이한 변화는 단순한 도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존을 좌우하는 구조적 현실"이라며 "이 전환기에 한·미·일 3국이 어떻게 협력하느냐가 앞으로의 질서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이제는 도전 과제를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해법을 만들어 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행사 중 한국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빅테크 CEO와의 연쇄 회동 배경도 설명했다. 최 회장은 "메모리를 못 줘서 미안하다고 인사하러 간 것"이라면서 "지금은 고객사가 원하는 만큼 메모리를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미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해 부과한 관세가 위법하다고 판결한 데 대해서는 "판결문을 보고 난 뒤 말씀드릴 게 있는지 보겠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반도체 관세 문제와 관련해서도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봐야 할 것 같고, 제가 미리 언급할 입장이 아니다"라면서 "한국은 원팀이 돼 이런 문제들을 잘 소화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최종현학술원이 주최하는 TPD는 한·미·일 전·현직 고위 관료와 세계적 석학, 싱크탱크, 재계 인사들이 모여 동북아와 태평양 지역의 국제 현안을 논의하고 경제·안보 협력 해법을 모색하는 집단지성 플랫폼이다. 2021년 시작돼 올해 5회째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