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버스>
얼마 전 모 공기업에서 회사 정책에 따르는 성향에 따라 직원들을 과일로 분류한 일이 있었다. 어떤 근거로 분류했다는 사실을 숨기려 함이었다. 하지만 승진 및 근무지 등에서 불이익을 당했다고 생각한 직원들은 부정적인 분류에 속했기 때문이라며 분노했다. 회사 측은 근거가 없는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 남과 다른 표식을 받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 나치가 유대인에게 낙인을 찍은 것처럼 그 표시는 다른 이들에게 우월감을 주며 그들을 괴롭힐 여지를 줄 수도 있다.
지금은 보편적 인권이란 개념으로 인해 차별이 많이 사라졌지만 불과 몇 십 년 전에도 의도치 않은 낙인이 존재했었다.

이 책의 제목인 숏 버스(short bus)가 바로 그런 존재다. 숏 버스란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이용하는 스쿨버스로 1975년 장애인교육법에 의해 탄생했다.
당시 장애인교육법(IDEA, the 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Education Act)의 제정으로 많은 장애인이 학교 교육을 받게 됐으나 통합교육이 강제되지 않은 탓에 장애 학생들은 비장애 학생들과 분리돼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이들이 타고 다닌 특수학급용 스쿨버스는 일반 스쿨버스보다 길이가 짧아 숏 버스라고 불리게 됐다. 교육받을 권리를 주었지만 별다른 고려 없이 독특한 통학수단을 제공한 덕분에 많은 이들이 열등감과 편견에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이런 숏 버스를 타야만 했던 저자는 난독증을 이겨내고 명문 브라운대학을 졸업한 후 장애 극복의 표본이 되며 활동가로, 강연자로 살아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상이 돼야 한다는 강박에 늘 시달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장애를 극복했지만 정상인은 아니라는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학습장애, 신체장애, 지적장애를 가진 13명을 만났다.
그는 세상이 정해 놓은 정상이라는 기준에 맞추려고 애써 왔고 그 기준과 맞지 않는 부분은 스스로 선을 긋고 분리시킴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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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숏 버스 여행을 통해 만난 이들은 있는 그대로 자신의 삶을 살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았다.
이에 그는 장애와 열등의 상징이라 생각했던 숏 버스를 버리려던 계획을 포기한다. 숏 버스를 타는 사람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인 것이다.
◇숏버스/조너선 무니 지음/전미영 옮김/부키 펴냄/400쪽/1만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