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국부펀드 600조시대 선진국에서 배운다]<9>한국 찾는 '글로벌 큰손'
싱가포르 테마섹 등 빌딩 사고 中企 투자도
"日 같은 잃어버린 10년 없을 것" 진출 러시

글로벌 금융시장의 '큰 손' 국부펀드들이 속속 한국 땅을 밟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막대한 손실로 움츠렸던 세계 각국의 금융 전문가들이 새로운 투자기회를 한국시장에서 찾고 있다는 분석이다.
◇ 국부펀드 새로운 각축장으로= 국내 주요 빌딩 매매시장은 이미 해외 국부펀드의 각축장이 됐다. 올 들어 아제르바이잔 국영 석유기금(SOFAZ)이 서울 중구 을지로2가의 파인애비뉴 A동 오피스빌딩을 4억4700만달러(약 4775억원)에 인수한 데 이어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투자청(ADIA)이 지난달 서울 회현동 오피스빌딩 '스테이트타워 남산'을 5300억원에 매입했다.
싱가포르 테마섹홀딩스도 최근 방한해 범한판토스 인천공항물류센터를 방문하고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테마섹홀딩스는 2011년 경기일죽물류(경기 안성), 2012년 현대종합물류(경기 안성), 2013년 오크라인서이천(경기 이천) 등 꾸준히 국내 부동산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씨티은행의 다동 사옥도 외국계 자금이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중구의 정동빌딩과 올리브타워도 매각작업이 본격화하면서 외국계 펀드들이 인수 후보자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부동산 종합컨설팅 회사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올 2분기 국내 오피스 투자금 1조9383억원 가운데 해외 자본 비중은 70%에 달한다. 해외 자본의 국내 오피스 시장 투자금이 1조원을 넘긴 것은 2011년 이후 3년 만이다.
국내 사모투자시장에도 국부펀드 바람이 거세다. ADIA가 한국을 심화투자 대상국으로 지정하고 상반기 중 국내 토종 PEF(사모투자전문회사) 운용사인 스틱인베스트먼트에 1억 달러(약 1060억원) 투자를 확약했다. ADIA는 하반기 들어 한앤컴퍼니와 IMM프라이빗에퀴티 등에 비슷한 규모의 자금 집행을 검토하고 있다.
ADIA가 지난해 한국 증시에 간접투자한 자금은 1조원을 넘는다. 트러스톤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에 각각 5억달러(약 5300억원)를 맡겼다.
중견·중소기업에 투자하는 국부펀드도 늘고 있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유니크(3,750원 0%)의 주식을 5.04%(97만4538주) 보유중이다. 총 취득 규모가 61억3800만원에 달한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노르웨이 정부가 지분 100%를 보유한 국책은행으로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 운용도 담당하고 있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지난해에도 차량용·산업용 배터리 제조업체인아트라스BX,조광페인트(2,990원 ▼15 -0.5%)등 국내 코스닥 상장사에 투자했다고 공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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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매력 크고 안정성 높아= 이들이 한국시장으로 시선을 돌리는 이유는 한국시장의 상대적인 성장 매력과 안정성 때문이다. 시장 자체의 규모는 큰 편이 아니지만 IT(전기전자), 엔터테인먼트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버티고 있는 만큼 세계적인 경제침체 속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애드리언 라이더 호주 퀸즐랜드투자공사(QIC)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공공펀드 공동투자 협의체' 출범식에 참석해 "삼성 같이 브랜드 파워가 있는 기업이 많아 관심이 많다"며 "하이테크분야는 유망한 투자분야인 데다 투자대상으로 훌륭한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키릴 드미트리 러시아 직접투자펀드(RDIF) 최고경영자(CEO)도 "한국의 첨단기술과 인프라산업 구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특히 한국의 조선 산업과 IT, 자동차 제조업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과의 차별성도 해외 국부펀드의 관심을 끄는 요인으로 꼽힌다. 윌리엄 F. 테드 트러스콧 아메리프라이즈파이낸셜 글로벌에셋매니지먼트 CEO(최고경영자)는 지난 8월 말 계열사인 스레드니들인베스트먼트의 한국 진출을 발표하는 간담회에서 "한국은 일본처럼 부동산 버블이나 주식 고평가 현상이 없어 '잃어버린 10년'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에서는 한국경제가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레드니들자산운용이 한국 시장 진출을 결정하게 된 데도 호전되고 있는 한국 증시가 한몫을 담당했다는 풀이다.
부동산시장을 중심으로 정부의 정부의 내수경기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도 해외 국부펀드를 끌어들이고 있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투자자문팀 양인희 이사는 "서울 오피스 시장이 해외 투자자들에게 주요 핵심 오피스 투자처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올해 주요 오피스 거래는 해외 투자자가 주도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한국투자공사(KIC)가 글로벌 30개 국부펀드와 연기금을 서울로 초대해 '공공펀드 공동투자 협의체'를 출범할 수 있었던 데도 이처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라진 한국경제의 위상이 크게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정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장기투자 성향을 가진 국부펀드의 국내 유입은 국내 시장 안정성과 장기 성장성 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