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종합)
집권여당 vs 추격야당…맨파워 가른 건 '공채'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5월 당직자 공개채용을 실시해 화제가 됐다. 기업으로 치면 신입사원 격인 9급 간사(일반직)로 예비합격자 3명 포함, 13명을 최종선발했다. 경쟁률이 약 40대 1로 높기도 했지만 야당이 2012년 이후 끊겼던 공채를 3년만에 재개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야당은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부터 20년간 따져도 공채를 실시한 게 8차례에 불과하다. 반면 새누리당은 탄탄한 공채 문화를 자랑한다. 민주정의당 시절인 1980년까지 거슬러가 공채 기수로 인정한다. 이렇게 세월이 쌓인 결과 여야 정당의 경쟁력에 상당한 차이를 가져왔다. 공채 실시여부가 정당의 인적구성과 역량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반된 공채 역사, 與 안 하면 사건-野 하면 이례적
여당은 민정당 시절의 민정1기(1980)부터 자기 당 공채로 본다.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탄생, 뒤이어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꿨어도 계속했다. 당직자들은 대개 공채로 충원됐고 경력을 쌓은 이들은 의원 보좌관으로, 정책전문위원 등으로 성장했다.
1997년 대선패배 후 야당이 되자 정치적 파장에다 예산 제약도 겹쳐 3년간 공채를 못했다. 이때를 제외하면 공채제도를 버리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YS)도 야당이었지만 민자당을 만들면서 여당 공채전통의 한 축이 됐다.
야당은 합당·통합이나 시민사회 영입 등 다양한 경로로 당직을 채웠다. 그러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평화민주당이 1988년 평민당 당보(신문) 기자를 공채로 뽑았다. 19대 국회의원 중 김현미·안규백 의원이 당시 당보 기자 출신이다.
민정당의 당직자 공채를 따라잡으려 한 이런 노력은 정례화되지 못했다. 정책전문위원 등은 공채로 뽑았지만 초급 사무처당직자를 공개채용하기엔 재정여력이 없다는 현실적 이유가 컸다. 여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열린우리당 시절에도 간헐적인 공채에 그쳤다. 2010년 민주당 때 비로소 공채 정례화를 시도했다. 2010~2012년 공채가 이른바 민주 1~3기, 올해가 4기에 해당한다.

물론 공채만이 정당의 유일한 채용 루트는 아니다. 채용이 획일화되면 자칫 당 조직이 관료화될 수 있다. 여권 인사는 "여당 공채 당직자는 사무실 업무가 많은 직장인과 유사하다면 야당 당직자들은 민주화 운동, 각종 선거 현장에 부딪치며 정치를 배웠기 때문에 순발력, 전략전술 면에서 낫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독자들의 PICK
지금 971명 읽는 중
그러나 수십년간 공채로 당직자 인재풀을 쌓은 여당이 그렇지 못한 야당보다 '맨파워'에서 낫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여야, '당 역량에 직결' 공채 장점 인정
새누리당은 4.29 재보궐 선거에서 지역별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공약 현수막을 걸어 효과를 봤다. 내용과 타이밍에서 야당을 앞질렀다는 평가다. 김무성 대표의 '결단'이 실제 현수막으로 반영되는 데 하루면 충분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손발을 맞춰 움직인 새누리당 당직자들의 역량이 '현수막 전쟁'의 승리 배경이라는 관전평이 국회 주변에서 나왔다. 여당의 자금력뿐 아니라 당직자의 소속감, 전문성, 목표의식 등이 업무효율과 성과로 직결되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과거 집권했기 때문에 당직자 공채가 가능했다면 이젠 공채를 하기 때문에 집권역량을 유지·발전시킬 수 있는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여야 어느 정당이든 꾸준히 젊은 인재를 충원하지 못하다면 당직자 연령과 직급 구성이 '역삼각형'처럼 고령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경륜이 풍부해지는 것은 장점이지만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기보다 예전 정치공식을 답습할 위험도 커진다.
당직자 공채는 당의 역량뿐 아니라 내부 계파문제와도 밀접하다. 야당엔 특정 세력의 실무 핵심이거나, 국회의원과 정치적 동지 또는 '사제관계'인 당직자가 적지않다. 이런 점은 여당도 마찬가지이지만 야당이 당직 인사를 실시할 때 특히 계파안배나 탕평이 쟁점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잦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모두 공채의 장점을 인정하고 이를 살려나갈 방침이다. 특히 젊은 인재를 발굴하고 경력을 쌓게 해 국회의원은 물론, 각급 단체장과 기초의원으로 진출시키면서 정당이 인재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어렵더라도 꾸준히 공개채용을 진행하는 건 고용절차의 투명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정치권이 작게나마 청년일자리 확대에 앞장선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 98년 국민회의 공채에 합격한 이원욱 새정치연합 의원은 "꾸준히 공채를 실시해 당의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같은 당 김유정 전 의원은 1991년 당직자로 정치에 입문했다. 김 전 의원은 공채·비공채를 떠나 "당직자들이 스스로 '중요한 일을 한다'는 자존감을 높이고 (당직자몫) 비례대표 공천에도 합당한 기준을 갖고 해야 한다"며 "그렇게 내부에서 맨파워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민자당 공채5기, 새누리 '인재 풀'…여·야 '공채 파워' 면면은?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중학생 때부터 정치인이 되겠다는 꿈을 꿨다. 대학교 전공도 정치외교학과를 택했던 그가 정치인의 꿈을 위해 선택한 진로는 바로 민주자유당 사무처 당직자였다.
김희정 장관은 대학 졸업 후 1995년 민자당 사무처 당직자 공개채용에 응모했다. 민자당은 1990년부터 당직자 공채를 실시해 당시 4기를 맞고 있었다. 김 장관은 당직자로 정당에 들어와 2003년 부대변인 등으로 활동하다가 2004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아 17대 국회 최연소 의원이자 역대 최연소 여성 국회의원 기록을 세웠다. 19대 재선에 성공한 후 지난해 여성가족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최연소 장관 기록도 추가했다.
새누리당에서는 김 장관처럼 당직자 공채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후 배지를 단 국회의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부산 지역 '신(新) 트로이카 시대'를 이끄는 주역으로 김세연·박민식 두 재선의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서용교 새누리당 의원도 그 중 하나다. 서용교 의원은 김 장관보다 한 해 늦은 1996년에 민자당 공채 5기로 정치권에 발을 디뎠다.
당시 민자당은 정당으로는 드물게 대규모 공채에 나서 37명을 뽑았고 이때 민자당으로 들어온 공채 5기들은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인재풀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서 의원 외에 이재성 전 새누리당 기획조정국장은 청와대 정무실 선임국장을 거쳐 박근혜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도 대선전략 기획에 핵심적 역할을 한 후 인수위원회에서 국정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으로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장성철 새누리당 당대표실 부실장과 장경상 경제부총리 정책보좌관은 각각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최측근 보좌진으로 활약하고 있다.
채성령 경기도청 대변인 역시 공채 5기로 당에 들어와 김 장관과 함께 주목받는 여성 당직자로 꼽혀왔다.
정용기 새누리당 의원은 민자당 공채 1기로 새누리당 당직자들의 맏형 같은 인물이다. 정용기 의원은 지난해 7·30 재보선으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1992년부터 정치권에서 뼈가 굵은 그의 무게감은 초선 이상이란 평가다. 재보선 출신 국회의원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 관행에도 불구하고 정 의원은 대전시당위원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이운룡 의원은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들어왔다.

민자당의 전신인 민주정의당 사무처 공채 출신 국회의원도 19대 국회에서 활약 중이다. 재선인 김태원 의원은 지난 1981년 민정당 공채 2기로 정계에 입문 후 국회의원이 될 때까지 공채 당직자의 모범적인 커리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당 정책위 전문위원과 중앙당 직능국 국장, 당대표 특별보좌역, 당 중앙위원회 부의장 등 당직자 경력을 차근차근 밟은 후 고양시 지역구를 다져 18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강원 원주갑 지역구의 김기선 새누리당 의원과 비례대표인 이운룡 새누리당 의원도 1980년대 초 민정당 공채로 정치권에 들어왔다.
야권에서는 안규백 새정치민주연합 전 원내수석부대표가 대표적인 정당 공채 당직자 출신이다. 평화민주당 공채 1기로 정치를 시작한 '김대중 키즈'다. 이원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공채 2기 출신이다.
14대와 16대, 17대 열린우리당과 통합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낸 김원웅 전 의원은 1972년 공화당 사무처 공채 7기로 정치권에 입문한 바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당의 이합집산이 반복되면서 사무처 당직자 공채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했다.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 평민당 창당과 함께 사무처 당직자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지만 공채 출신은 아니고 김현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비슷한 경로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김현·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당직자 몫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지만 공채 출신은 아니다.
여·야 공채 시험, 어떤 문제 나오나…합격후 진로는?
여야가 당직자를 선출하는 과정은 일반 기업체 채용 절차와 닮은 듯 다르다. 공개 채용을 통해 인재를 영입하고 주변 환경에 따라 채용 규모가 결정되는 모습은 비슷하다. 하지만 조직의 존립 목적이 이윤 창출이 아닌 정권 창출이다 보니 지원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기업체와 다르고 다른 정당으로 이직도 거의 없는 편이다.
1일 정치권에 따르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채 기수는 각각 16기와 4기로 정리된다. 당료 채용은 중앙당과 시·도당 당직자(유급)를 각각 100명 이하로 두도록 한 정당법을 기반으로 정당의 집권 여부, 국회의원 숫자 등을 감안해 이뤄진다.
우선 시험과목을 살펴보면 양대 정당은 비슷한 능력을 시험한다. 지난해 4월 16기를 뽑은 새누리당은 필기시험에서 정치학·경제학·경영학·법학 등 주요 학문을 아우르는 종합상식과 논술로 지원자 성적을 매겼다. 올해 5월 4기를 선출한 새정치연합도 여당과 비슷하게 정치교양·역사교양·시사상식 및 논술로 지원자를 평가했고 양 당 모두 필기합격자는 면접 절차를 거쳤다.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들은 자신의 정치 성향과 가치관을 테스트 받게 된다. 가령 새누리당은 16기 채용 당시 '6·4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제안'을 자기소개서와 함께 제출토록 했다. 새정치연합은 18대 대선이 있었던 2012년 3기를 채용하며 당시 시대 화두였던 '경제민주화 실천 방안'과 '대선 승리 대책' 등을 시험했다.
일반 기업체와 마찬가지로 당료가 승진하려면 내부 심사를 거쳐야 한다. 국장-부국장-부장-차장-과장-주임-간사-행정보조요원으로 나뉘는 양 당 직급체계에서 새누리당은 과장 승진과 부장 승진 때 당헌당규, 정치자금법, 국회법 등을 시험한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승진 시 면접 심사를 거치고 부국장 이상부터 논술 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모두 조직관리, 총무, 공보, 기획, 행정, 정책, 지도부 보좌 등 당직자들이 하는 일은 비슷하다. 다만 새누리당은 당직자 중 공채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이 새정치연합보다 높아 공채 출신들의 응집력과 활약이 더 도드라진다는 평가다.
지난 2013년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새누리당 사무처 노조의 비판 성명이 대표적 예다. 당시 김 의원이 서울지역 조직위원장 선정을 위한 회의에서 당직자에게 던진 막말이 화근이 돼 사무처 노조는 김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한 바 있다. 양쪽 주장은 엇갈렸지만 공채 출신이 다수 포함된 사무처 노조의 힘을 엿볼 수 있는 예다.
또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당직자들이 청와대로 파견 나가기도 한다. 박근혜정부에선 청와대로 파견된 공채 출신 당직자가 7~8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주로 의전, 공보, 정무 파트에 배치된 이들은 보좌관 출신보다 '당성'이 강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채용 규모는 집권 여부와 국회의원 수에 따라 달라진다. 새누리당의 경우 이명박정부·박근혜정부 집권기를 거치고 18·19대 국회에서 다수당을 점하며 1~2년마다 공채를 뽑았다. 여당은 의원 수에 따라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이 많아 야당보다 살림살이가 낫기 때문이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공채시험이 2010년부터 정례화됐지만 채용 규모가 여당보다 다소 적다.
[뷰300] 與 '㈜여의도' vs 野 '너섬 동아리'

새누리당은 ‘회사’, 새정치민주연합은 ‘동아리’.
'이익 추구'를 위한 회사처럼 빈틈없이 돌아가는 여당. 운동권 선후배로 엮인 학습 동아리 마냥 '이상 추구'만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야당. 양당의 대조적 특징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두 조직에 별칭을 붙인다면 '여의도 주식회사'와 '너섬 정치동아리'정도 되겠다. '너섬'은 '여의도(汝矣島)'의 순우리말로 학생운동권 출신이 많은 야당에 어울린다.
양당 중앙당이 굴러가는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특히 언론입장에서 중앙당 사무처에 전화를 해보면 그 차이가 드러난다. 새누리당은 질의사항이나 요청하는 자료에 대해 겉으로라도 최대한 협조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공보조직이 아닌 실무부서의 경우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일반 민원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새누리는 ‘협조적’인 '인상'을 주려 애쓴다는 느낌이다. 새누리 중앙당의 일처리는 시중의 일반 회사와 비슷한 셈이다. 소위 ‘CS(Customer Satisfaction)마인드'가 있다. ‘이미지’정치를 잘 한다고 볼 수 도 있다.
새정치연합은 그 반대다. 민원인을 대하거나 언론을 대하는 방식이 좋게 말하면 ‘투박’하고 나쁘게 말하면 ‘거칠다’.
그 차이는 인적구성의 차이에서 온다는 평가가 있다. 새누리당은 오랜 전통의 체계적인 '공채' 중심으로 돌아가는 반면, 새정치연합은 ‘인맥’에 의한 ‘특채’출신이 많다.
정책역량을 비교할 때, 보통 새누리 여의도연구원이 새정치연합 민주정책연구원보다 우위에 있단 평가가 많다. 야당의 인력풀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인재가 부족한 이유로 야당의 '배타적' 분위기도 문제로 꼽힌다. '우리 편'이란 인식과 '인맥추천'이 아니면 같이 일하기 힘든 조직적 특성이 사람을 불러 모으기 힘들게 만든단 것.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여당에 사람이 더 몰리는 게 인지상정이라 해도 ‘수권정당’, ‘정책정당’을 지향한다는 야당 입장에선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지적이다. 굳이 '싱크 탱크'를 비교하지 않더라도, 사무처 정책조직도 여당이 앞서 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별로 없다.
야당이 분당과 합당 그리고 재창당 과정을 거치면서 실속없이 중앙당만 비대해진 저효율 조직으로 퇴보해갔다는 평가도 있다. 가장 최근의 합당과정인 지난해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측과의 합당에서도 ‘5:5 지분’은 중요 조건이었다.
조직만 비대해지고, 구성원들 간에 알력만 심해졌단 아우성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여당도 계파싸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밖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야당보단 적다.
문제가 있는 당료라도 계파지분으로 계속 살아남는 구조도 야당의 취약점이다. “저 사람 곧 사고치겠다”고 누구나 한 마디씩 하는 사람이라도 ‘사고’를 치고 문제가 발생해서야 나가게 된다면 발전적 조직이 되지 못한다. '문제적 인물'이 계파 안분때문에 자리보전이 가능한 점은 야당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 먹었다. "일할 사람이 없고 일 시킬 사람이 안 보이고 믿고 맡길 사람이 적다"는 말은 야당 내부에서도 나오는 '곡소리'다.

변화의 시도는 있다. 지난 5월 공채에서 새정치연합은 블라인드 방식을 도입해 철저히 능력위주로 뽑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52: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신입 공채 간사의 평균나이는 32세, 최고령자는 38세였다.
이들은 선배격인 팀장들과 나이차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더 많은 상황이 발생했다. 당분간 적응이 쉽지 않겠지만, 오히려 야당에겐 이번 공채가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그간 전대협, 한총련 출신의 인맥으로 채워졌던 자리가 능력위주 인재로 바뀌어 나간다면 야당이 그토록 원하는 ‘수권 능력’이 배양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야당이 체질개선을 하지 못한 채, 다음 대선을 치른다면 ‘집권 정당’이 될 길은 요원하다. 야당내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다만 '해결'이 쉽지 않은 게 문제다.
‘당권재민 혁신위원회’가 아무리 당조직을 혁신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조직변화를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 앉는 '사람들'에 변화가 없다면 야당은 희망이 없다.
‘정치’야말로 ‘사람’이 하는 일 중 가장 '인력(人力)'에 의존하는 일이다. 그 ‘사람(人)’이 누구냐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게 '정치'다. ‘일머리’를 아는 사람이 ‘자리’에 더 많이 앉아 있는 조직이 결국엔 앞선다.
여야의 총선·대선 승리공식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일 잘하는 정당이 이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