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모더니스트에서 참여파 시인으로…그의 파란만장한 삶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95년 전 오늘(1921년 11월27일)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넓힌 참여시인 김수영이 태어났다. 그는 거짓과 억압을 배격하고 자유와 사랑을 노래한 시인으로 우리에게 기억돼 있다. 특히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 '풀'(1968년)은 부당한 권력에 대한 고통과 저항의지를 불태운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김수영(1921~1968년) 시인은 48세 젊은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덧없이 짧은 생이 말해주듯 그의 삶은 역사의 질곡에서 상처를 받았고 특히 포로수용소의 경험은 '자유'에 대해 뼈저린 열망을 갖게 한다.
서울에서 출생한 김수영은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상대에 입학했지만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해 가족들과 함께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했다. 2년 뒤 해방이 되면서 연희대(연세대 전신)에 편입했으나 중퇴한다.
그후 한국전쟁(1950년) 때 '문화공작대'라는 의용군에 강제로 동원됐다가 탈출하지만 이 일로 경찰에 체포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끌려간다. 김수영은 1952년 11월 동료 문인들의 도움을 받아 석방된 이력을 갖고 있다.
초기 김수영 시인은 모더니즘적인 시를 쓰던 작가였다. 그는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전통적 시 형식에서 벗어난 도전의식을 지닌 시인이었다. 하지만 당시 정치권력이 지나치게 부패하자 4·19혁명를 기점으로 현실 비판적인 참여시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푸른 하늘을' '4·19시' '하 그림자가 없다' 등의 시들은 바로 1960년 4·19혁명 전후에 쓰인 것이다.
하지만 그를 뜨겁게 했던 4·19혁명은 390일 만에 끝나고 통제와 금기의 시대가 찾아온다. 또다시 끝없는 자기 검열의 시대가 펼쳐지며 상황은 더 나빠졌다. 김수영은 시를 통해 부정한 권력과 사회적 부조리에 저항하지 못하는 소시민적 자세와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고발한다.
1968년 6월16일 김수영은 서울적십자병원에서 48년의 짧았던 삶을 마감한다. 전날 술을 마신 뒤 귀가하다 버스에 치인 그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렇게 신동엽(1930~1969년)과 함께 1960년대를 대표했던 참여시인 김수영은 세상을 떠났다.
김수영 사후 김동리·박목월 등 한국의 대표 문인들과 지인들이 뜻을 모아 1969년 그의 사망 1주기를 맞아 서울 도봉산 기슭에 마지막 작품 시 '풀'이 새겨진 시비를 세웠다. 1981년 출판사 민음사는 그를 기념하는 '김수영 문학상'을 제정하여 신예 시인에게 현재까지 매년 상을 수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