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소통의 시작은 엉뚱한 질문과 생뚱맞은 답변에서

김고금평 기자
2015.06.27 05:41

심언주 시인, 두번째 시집 '비는 염소를 몰고 올 수 있을까' 발매…비논리적 연결에서 소통찾기

‘보름달이 둥둥/굴뚝 위에 걸린 밤/이 얼굴입니까?/내가 알지 못하는 얼굴을 깎고, 메우고 몽타주는 쉽게 완성되지 않는다/~’(‘비는 염소를 몰고 올 수 있을까’의 ‘굴뚝들’ 중에서)

시인은 의문과 불투명의 색채로 진리 찾기에 나선다. 깍고 메우지만, 원본의 얼굴을 그대로 소생시키지 못하는 몽타주는 여전히 ‘소통 불가능’한 이질의 언어이고, 다가갈 수 없는 진리의 그림자일 뿐이다.

진리에 일치할 수 없다면 소통은 실패한 것일까. 시인은 실패를 예상해도 불가능의 자리에서 계속 질문을 던지는 행위 자체가 진정한 소통의 일환이라고 역설한다.

첫 시집 ‘4월아, 미안하다’에서 경쾌한 감수성과 세련된 언어로 문단의 주목을 받은 심언주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비는 염소를 몰고 올 수 있을까’를 내놨다.

시인이 시집에서 주목하는 건 불완전성과 불투명성. 원인과 결과가 불투명한 시대에,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의문’이라는 역설일까. 시인은 그렇게 의문과 어설픈 대답의 반복에서 연결되는 생뚱맞은 이음에서 소통의 단서를 찾는다.

비는 염소를 몰 수 있는 주체가 아니고, 염소 또한 비의 본질을 알지 못한다. 이 상관없는 주체의 비논리적 연결성에 시인은 언어와 존재, 존재와 세계의 탐구를 진행한다. 모든 관계는 입속에 있는 혀처럼 무관하지만, 계속되는 질문과 질문의 메아리는 키스하는 연인의 혀처럼 분리 불가능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시인이 보는 관점이다.

‘비는 염소를 몰고 올 수 있을까’는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질문이며, 대답이 이미 여러 갈래로 정해진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질문에 걸맞은 엉뚱하거나 이질적인, 아니면 환상적인 답변을 준비하는 일일 것이다. 소통은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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