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기사 조훈현(62).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온지 오래지만 그는 여전히 조국수라 불린다. 본래 '국수'라는 칭호는 국내 최대 기전이었던 국수전 우승을 거둔 기사에게 내려지는 칭호다. 통산 16회로 국수 타이틀을 가장 많이 획득한 조훈현에게는 영원한 국수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만큼 한국 바둑 역사를 바꿔놓을 만큼 커다란 업적을 세웠고, 변방의 한국 바둑을 세계 중심으로 이끈 인물이라는 뜻이다.
조훈현이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를 통해 독자에게 훈수를 뒀다. 그는 △생각 속으로 들어가라 △좋은 생각은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이길 수 있다면 반드시 이겨라 △판을 정확히 읽고 움직여라 △더 멀리 예측해라 △아플수록 복기해라 △생각을 크게 열어라 △사람에게서 배워라 △심신의 균형을 찾아라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만들라며 독자에게 10가지 조언을 건넨다.
조훈현의 10가지 조언은 바둑과 그의 인생을 통해 우러러 나온 '경험'의 일부라는 점에서 더 뜻 깊다. 조훈현은 지금까지 1938승을 거둬 한국 바둑사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뒀다. 자신의 제자인 이창호(통산 2위)보다 200승 이상을 더 거뒀다. 통산 우승 횟수는 160번으로 이창호보다 20회 앞선다. 세계 대회 첫 우승도 조훈현의 몫이었다.
조훈현 인생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2002년과 2003년, 세계 최대 기전인 삼성화재배 우승을 연달아 차지한 순간일 것이다. 그의 나이 49세였고, 이미 10년 전 자신의 제자인 이창호에게 최강의 칭호를 물려준 뒤였다. 40대 바둑기사는 체력 때문에 젊은 기사를 넘어설 수 없다는 속설을 보기 좋게 깬 것이 바로 조훈현이다. 당시 우승은 세계대회 최고령 우승 기록으로 남아있다.
조훈현은 "이길 수 있다면 이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전의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내가 버텼던 이유는 이겨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아직 이길 기회가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라고 독자에게 전한다.
심신의 균형을 찾고, 아플수록 복기하라는 그의 조언도 정상에서 내려온 뒤 10년만에 정상으로 복귀한 조훈현의 인생에서 우러나오는 경험이다.
조훈현은 바둑판 전체를 아우르는 기사로 통한다. 당시 바둑계에는 '이중허리', '우주류' 등과 같은 각 기사만의 기풍이 존재했다. 실리를 추구하는 기사, 세력을 추구하는 기사 등 자신의 색깔이 분명했다.
기풍과 관련해 조훈현은 '전신'(戰神), '물찬제비'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누구보다 강한 창을 갖고 있던 그는 판 전체를 읽는 탁월한 능력으로 바둑판 곳곳에서 전쟁을 벌였다. 한 수 더 둬야할 것 같은 곳에서 손을 빼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 침투해 전투를 벌이고 나면 어느새 상하좌우의 바둑돌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이 때문에 바둑 고수 외에는 누구도 조훈현의 의도를 읽어내지 못했다. 판을 정확히 읽고, 더 멀리 예측하고, 생각 속으로 들어가라는 그의 조언은 여기서 비롯된다.
조훈현은 세계 바둑역사에 유례없는 업적을 세웠지만 제자 이창호를 비롯해 후배 기사들의 도전 앞에서 패배의 쓴맛을 보기도 했다. 정상과 밑바닥을 여러 번 오가는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생각의 힘'을 깨달았다.
이제는 바둑을 두는 게 그저 좋을 뿐이라는 영원한 국수 조훈현. 그는 남의 눈치만을 보며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한 가지 메시지를 남긴다.
"자신만의 바둑을 두라. 자신의 영토를 최대한 넓히자. 신중하게 포석하고 거침없이 공격하되 치열하게 방어하자. 죽을힘을 다해 싸웠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이긴 것이다."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조훈현 지음. 인플루엔셜 펴냄. 268쪽. 1만54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