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의 키워드는 새로운 도약이지만, 과거 없는 미래가 도약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다시 역사 얘기를 꺼내들었다. ‘우리 역사는 깊다1,2’를 펴낸 역사학자 전우용은 이 책에서 과거의 구체적인 날짜를 생생히 기억하며 그 시대가 비춘 오늘을 얘기하고, 성찰과 반성의 재료로 ‘과거의 오늘’을 되짚는다.
역사적 오류와 편견의 대표적 사례로 그는 교과서를 지목했다. “국정 교과서에서도 국가주의적 태도가 보입니다. 1990년대까지 우리는 역사교과서에 대한 방향을 나름대로 잡았는데, 최근 국정교과서는 퇴행적인데다 전반적으로 민족주의의 회기로까지 여겨질 정도예요. 유럽사만 보더라도 한 나라의 역사를 따로 조명하지 않고 통틀어서 보여주는 세계사와 연계하는 역사지만, 우리는 세계사속의 역사가 아닌 오래된 애국주의의 국가 강화라는 측면이 강해요. 시대적 추세와 동떨어진 셈이죠.”
광복 70주년을 돌아보는 역사 인식에서 그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건 성찰적 태도의 부족이다. 600년이나 된 도시 서울에서 역사의 흔적이 거세되고, 새로운 것에 몰두하면서 옛것을 돌아보는 데 주저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 "앞만 보고 달리는 시대…70년 역사 되돌아봐야 새로운 도약"
“자신의 70년 역사를 성찰하는 태도가 부족해요. 아니 성찰할 시간이 없는 것 같아요. 88년 올림픽 개최 이후 우리나라가 대중소비 사회로 변하면서 대중에게 시선을 사로잡는 게 통하고 팔리는 일상에서 어떤 성찰적 태도가 나오겠어요? 자라면서 자신이 써왔던 물건을 보고 옛날 기억을 떠올리며 성찰과 반성의 계기를 마련하는 건데, 지금은 과거와의 단절이라고 할 만큼 앞만 보고 달리는 시대속에 살고 있잖아요.”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에선 주인공이 21세기 현재 파리에서 과거의 마차를 타고 1920년대로 건너가 헤밍웨이와 피카소 등 전설적 예술가들을 만나 꿈같은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과거가 ‘정답’은 아니지만, 현재의 문제에 대한 구원의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중세나 조선시대는 롤 모델을 늘 과거에 뒀어요. 정치가 제일 잘 된 시대를 요순시대라 하고, 기독교에선 에덴동산이 인간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 하죠. 옛날 사람들에게 가장 빛나는 시대는 과거로 향했어요. 20세기 이후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면서 장밋빛 미래를 안겨주는 낙관주의가 득세했는데, 그 기반 자체가 약해요.”
낙관적 사고가 역사의 단선적 발전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의 전제는 물질적 풍요이고, 그 풍요의 기반은 경쟁이다. “경쟁이 없는 곳에 발전이 있나요?” 그는 물었다. “그래서 그런 경쟁의 끝에서 우리가 발견한 건 무엇인가요?” 그가 재차 물었다.
경쟁의 가장 노골적인 행태가 결국 전쟁으로 구현됐고, 전쟁은 인간의 진보는커녕 문명 파괴와 인권 유린의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 미래가 늘 장밋빛 청사진으로 구현되는 낙관주의 태도로 일관되는 것이 아닌, 성찰의 태도로 수렴돼야한다는 귀중한 철학은 경쟁의 끝이 보여준 교훈이었다.
“우리는 6.25 전쟁 이후 고도 성장기를 보냈고, 그게 체질이 됐어요. 체질 속에서 보면 과거는 가치 없는 것으로 보기 십상이죠. 그걸 30년 넘게 계속 진행해오고 있는 거 아닌가요? 고속도로의 맛을 본 사람은 도로 막히는 걸 견디지 못하죠. 여전히 개발 시대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넘친다는 얘기예요. 60년대 초가집을 없앤 일이 한국의 역사 경관을 얼마나 파괴했는지 가슴 아프게 인식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등 압축성장의 후유증을 겪은 사람들의 반성 기간도 최장 20년을 넘기 힘들다고 봐요. 그러니 페리호 침몰 사건이 생기고 20년 후에 세월호 사고가 나도 마치 처음 있는 일처럼 받아들이잖아요. 모두 역사를 가볍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들인 셈이에요.”
◇ "경쟁의 극단적 모습은 전쟁…개발 시대 눈으로 사물을 봐서는 안돼"
그는 역사에 대한 기억은 모두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권력자들은 승리의 역사만을 기억하려하지만, 그 이면에 도사린 지우고 싶은 작은 역사들도 주목해야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위인의 것도 있지만, 별 볼일 없는 개인의 역사도 공존한 측면이 있어요. 그건 좌우 같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나 지방, 공동체와 가족 차원에서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역사를 다룬다는 의미죠. 그게 건강한 역사라고 봅니다. 광복 70주년에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는 무엇인가요. 용산에 들어선 전쟁기념관은 잊지 않겠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전쟁 무기나 승리의 역사 일색이잖아요. 전쟁 자체를 비극이나 성찰의 차원에서 보여주는 시도는 제한적일 뿐이에요. 한 사안에서 다른 시선이 공존하는 역사, 성숙한 사회는 그렇게 시작되는 겁니다.”
역사학자가 보는 현대는 ‘부유하는 시대’다. 과거는 미래를 준비하는 인식이 아닌 상품이고 현재라는 시대는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 만연하는 질서 없는 문명이다. 부유하고 흔들리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그는 “역사는 한편으로 성찰의 재료지만, 지속성과 안정성을 제공하는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강남 개발이 욕망의 아이콘을 만드는 사건이었잖아요. 50년이 지나도 대다수 사람들은 욕망의 종점을 포기하지 못하죠. 역사를 지워가며 몰입해온 것이 재개발 과정이었으니까요. 아파트 건설 붐이 막 일었을 때, 한 일본 역사학자가 제게 묻더라고요. ‘시간이 지나서 낡으면 어떻게 할거냐’고. 산보다 큰 건축폐기물을 보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게 되면 결국 오래된 문화와 동거하는 형국에 이를 거예요. 자본의 생각도 결국 ‘그런 쪽(오래된 문화와 동거)이 아니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할 거라는 교훈을 얻을 겁니다.”
광복 70주년 생일에 그가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관용의 정신’이다. 우리가 떳떳하게 살았다고 후손들에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을 관용에서 찾자는 것이다.
◇ "'국가는 나의 운명'? '좋은 국가'가 돼야 국가의 권위와 정당성 유지"
“아직까지 우리는 전쟁의 문화에 지배받고 있어요. 관용이라는 건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의지’예요. 누가 관용을 먼저 베풀어야할까요. 힘 있는 쪽, 더 많이 가진 쪽에서 마음의 문을 열어야합니다. 미국에서 10년 전 조사를 했는데, 상류층은 역사(과거), 중류층은 국가(미래), 하류층은 지역사회(현재)에 몰두한다고 해요. 과거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는 상류층이 다른 관점을 열어주는 태도에서 관용의 문화는 시작돼요. 다른 관점을 인정하는 태도는 세계사의 큰 방향이기도 합니다. 서로 이해하려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지금 필요한 건 승리뿐 아니라 좌절과 패배의 역사도 꺼내야한다는 거예요.”
공존이 닫혀있는 사회에선 국가를 인식하는 개인의 태도도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그가 보는 시각이다. ‘국가는 나의 운명’이라는 지상명제가 2000년대 이후 ‘국가가 나를 버리면 나도 버리겠다’는 상대적 관점으로 변화한다는 것. 스케이팅 선수 안현수 사건이 그랬듯, 국가 상대화는 이제 세계적인 추세인 셈.
무엇보다 외국인 노동자의 대거 유입, 민족 개념의 변화, 이민 동호회 설립 등 국가 의무화에 대한 인식이 내·외부적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를 향한 개인의 헌신과 희생을 맹목적으로 요구할 수 없다는 논리다.
“초국적 사회에서 국가끼리 경쟁해서 국민이 선택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봐야 해요. 그러니 국가가 권위나 정당성을 유지하려면 ‘좋은 국가’가 돼야합니다. 70년 전에 우리가 찾았던 국가의 정의는 무엇이고, 지금의 국가는 무엇인가를 고민해야한다는 얘기예요. 그렇지 않으면 국가도 기업처럼 다가올 확률이 높고, 국가와 국민은 기업과 고객의 관계처럼 인식될 날이 멀지 않을 거예요. 광복 70주년, 도약의 의미는 여기서부터 시작돼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