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사랑한 일본 작가…추리 넘어 인간을 쓴 히가시노 게이고 [스토리후]

차유채 기자
2026.07.28 04:30
[편집자주] 뉴스와 이슈 속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뉴스와 이슈를 짚어봅니다.
사진은 고(故) 히가시노 게이고. /사진=머니투데이 사진 DB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대장암 투병 끝에 지난 23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68세.

고단샤 출판사는 지난 27일 고인의 부고를 전하며 장례는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졌다고 밝혔다. 오는 8월 일본에서 출간 예정인 신작 '영원한 기억'은 그의 유작이 됐다.

인간 심리를 파고드는 치밀한 서사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그는, 일본을 넘어 한국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데뷔 후 40여년간 100권이 넘는 작품을 집필하며 미스터리 소설의 대중화를 이끈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엔지니어에서 일본 추리소설 거장으로
사진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방과 후'와 '용의자 X의 헌신' 표지. /사진=알라딘 홈페이지

195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린 시절부터 추리소설을 즐겨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오사카부립대(현 오사카공립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도 틈틈이 소설을 집필했다.

그는 1985년 장편 '방과 후'로 일본 추리문학의 등용문인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전업 작가의 길을 걸으며 사회파 미스터리와 본격 추리, 휴먼드라마를 넘나드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1999년 '비밀'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았고, 2006년에는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 중 하나인 나오키상을 받으며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백야행', '악의', '붉은 손가락', '녹나무의 파수꾼', '가면 산장 살인 사건', '동급생'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키며 일본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약했다.

범인을 넘어 사람을 이야기한 작가
사진은 고(故)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대표작인 책 '백야행'. /사진=뉴시스, 알라딘 홈페이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범인을 찾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시선은 범죄의 동기와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선택에 닿아 있었다.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틀 안에 사랑, 희생, 죄책감 등 보편적인 인간 본성을 녹여내며 추리소설의 외연을 넓혔다.

대표작인 '용의자 X의 헌신'은 천재 수학자의 헌신적인 사랑을 미스터리와 결합해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고, '백야행'은 비극적인 운명의 두 남녀를 통해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그려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위로와 희망을 전하며 추리소설 독자가 아니더라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또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가가 형사 시리즈',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등 장기 시리즈를 통해 일본 미스터리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한국서도 이어진 '히가시노 열풍'
사진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가 보도된 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추모글. /사진=인스타그램 @bookcafe_analogday, @book_kkurueogi

히가시노 게이고의 영향력은 한국 출판 시장에서도 독보적이었다.

2012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누적 판매량 200만부를 돌파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2009~2018년 10년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소설가 1위(누적 약 127만부)에 오르기도 했다.

발표하는 신작마다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한 것은 물론, 수많은 작품이 영화와 드라마로 재탄생하며 국내 독자들에게 친숙한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고인은 2023년 뉴시스와 인터뷰에서 "한국에서의 인기를 대단히 영광으로 생각한다. 데뷔 때 목표였던 책 100권 쓰기를 이룰 수 있어 행복하다"며 깊은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아울러 "소설은 로봇을 조립하듯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전체에서 아이디어가 나온다"며 자신의 창작 철학을 설명하기도 했다.

영원히 읽힐 이름, 히가시노 게이고
사진은 고(故)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대표작인 책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사진=뉴스1, 교보문고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히가시노 게이고.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도 유작이 된 신작을 끝까지 다듬으며 그는 작가로서의 소명을 마지막까지 지켜냈다.

비록 거장의 펜은 멈췄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은 여전히 독자들의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치밀한 추리, 그리고 이야기가 지닌 힘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남긴 문장들은 앞으로도 누군가의 밤을 함께 밝히며 오래도록 읽힐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단순한 추리소설을 넘어,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문학적 유산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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