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국민연금은 '고래의 딜레마(The Whale's Dilemma)'에 빠졌나

[유효상 칼럼] 왜 국민연금은 '고래의 딜레마(The Whale's Dilemma)'에 빠졌나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6.07.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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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지난 7월 1일, 국민연금이 반년 가까이 미뤄뒀던 국내주식 리밸런싱(Rebalancing)을 재개했다. 리밸런싱은 투자 포트폴리오를 정기적으로 미리 정해 놓은 기준으로 돌려놓는 '원상 복원 과정'으로, 특정 자산 비중이 정해진 기준을 벗어나는 즉시 원점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금년 상반기 국내 주가가 폭등하며 국내 주식 비중이 급증한 상황이라, 시장은 수십조 원대 '매도 폭탄'을 각오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이날 순매도는 2178억 원, 일주일 누적으로도 4665억 원 수준에 그쳤다. 우려했던 '고래의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자산운용 규모(AUM) 기준으로 일본,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3위인 국민연금이 처한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래의 딜레마(The Whale's Dilemma)'다. 고래는 몸집이 너무 커서 가만히 있어도, 움직여도 주변에 파도를 만든다. 국민연금이 보유 주식을 팔면 대형주가 흔들리고, 팔지 않으면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어느 쪽을 택해도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이 구조는, 국민연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 상황과 스스로 더 깊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복합적인 결과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국민연금의 거대한 몸집 그 자체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보유 규모는 웬만한 대형주의 최대주주 지분율에 맞먹는다. 이 정도 몸집을 가진 기관이 시장에서 조용히 사고팔 방법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팔면 수급 공백이 생기고, 안 팔면 비중 왜곡이 쌓인다. 누가 기금을 운용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구조적 제약이라는 점에서, 이는 국민연금의 실책이 아니라 규모가 가진 숙명에 가깝다.

여기에 코스피 특유의 시장 구조가 겹친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4개 종목의 비중이 6월 말 기준 55~60%에 달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극소수 대형주에 지수 자체가 쏠려 있는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아무리 분산을 원해도 지수를 추종하는 이상 대형주 비중을 일정 수준 이상 가져갈 수밖에 없다. 이는 국민연금이 만든 문제가 아니라, 국민연금이 몸담고 있는 시장 자체의 구조적 한계다.

국민연금이라는 조직의 정체성 역시 이 불가항력을 키우는 요인이다. 국민연금은 수익률만 좇는 민간 펀드가 아니라, 국민 여론과 정치권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준공공기관이다.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오히려 양쪽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다는 점이 이 이중 구속의 본질을 보여준다. 증시가 오를 때는 "국민연금이 상단을 눌러 개인의 수익 기회를 빼앗는다"는 불만이, 내릴 때는 "국민연금이 바닥을 받쳐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동시에 제기된다. 이런 이중 구속은 제도의 태생적 성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배구조를 아무리 손봐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처한 딜레마 전부를 불가항력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이번 사태의 상당 부분은 오히려 국민연금 스스로 만든 것이다. 연초 14.4%였던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1월 기금운용위원회가 14.9%로 올리며 리밸런싱도 함께 유예했고, 코스피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5월 28일에는 단번에 20.8%까지 5.9%포인트나 또 올렸다. 같은 시기 해외주식, 국내채권, 해외채권, 대체투자 등 다른 모든 자산 비중을 줄여 여유분을 고스란히 국내주식 쪽으로 옮긴 것이다.

타이밍마저 어긋났다. 7월 리밸런싱 재개를 앞두고 국민연금은 매도 규칙을 '당월 10영업일 최대 50bp(0.50%포인트) 조정'에서 '당월 20영업일 최대 25bp(0.25%포인트) 조정'으로 완화했다. 하루 매도 규모를 추정치의 4분의 1 수준으로 낮춘 것이다. 그런데 이 조정이 채 자리 잡기도 전인 7월 7일 코스피가 하루 만에 4.91% 급락했고, 다음 거래일에도 5.35% 빠지며 올해 17번째 '매도 사이드카(Sidecar)'가 발동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은 고점에서 챙겨야 할 차익을 놓치고, 정작 시장이 무너질 때는 받쳐줄 실탄마저 바닥난 최악의 타이밍을 자초했다.

목표비중을 사후에 상향하고, 허용범위 자체도 공개하지 않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시장은 국민연금의 다음 행보를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외국인이 올해 상반기 148조 원을 순매도하며 차익을 실현하는 동안 국민연금은 7월 첫째 주까지 9조 원에도 못 미치는 현금화에 그친 것도 규칙을 완화하며 매도 시점을 늦춘 탓이다. 시장 충격을 줄이겠다는 취지의 임기응변적 결정이 결과적으로 원칙을 지킬 타이밍을 스스로 미루게 했고, 신뢰를 무너뜨리는 연쇄 반응의 첫 단추가 됐다. 특히 목표비중을 대폭 상향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정량적 근거와 추계 모델이 시장에 투명하게 제시되지 않은 점은 정책 예측 가능성을 더욱 떨어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몸집과 시장 구조, 이중 구속처럼 바꿀 수 없는 조건은 받아들이되, 스스로 무너뜨린 원칙만큼은 다시 세워야 한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재량이 아닌 규칙에 기반한 '동적 밴드(Dynamic Band)'의 도입이다. 시장이 급변할 때마다 목표를 사후적으로 고쳐 쓰는 대신, 코스피 변동성지수(VKOSPI)나 최근 '20영업일 일평균 변동폭'에 연동해 허용범위 자체가 자동으로 넓어지고 좁아지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다. 변동성이 커질 때는 억지로 팔지 않아도 되도록 울타리를 넓혀주고, 시장이 안정되면 다시 울타리를 좁히는 일종의 '자동 안전장치'인 셈이다. 언제, 어떤 조건에서 목표가 바뀌는지 시장이 미리 알 수 있어야 비로소 '재량'이 아니라 '규칙'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미 일본 GPIF나 캐나다 CPPIB 등 글로벌 주요 연기금은 정교한 Dynamic Band와 선제적 정보 공개를 통해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규칙 기반 운용을 확립해 두고 있다.

아울러 국내주식에 대한 절대적 의존도를 낮추는 장기 전략도 뒷받침돼야 한다. 소수 대형주 편중이 극심한 시장 구조 자체를 국민연금이 바꿀 수는 없지만, 그 구조 안에서 자신의 노출을 조절하는 것은 가능하다. 해외주식·대체투자 비중을 장기적으로 확대해 국내 대형주 리스크에 대한 절대적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자산배분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국내주식 목표 비중이 2024년 15.4%, 2025년 14.9%로 꾸준히 낮아지다가 올해 20.8%로 급반등한 흐름 자체가, 장기 전략과 단기 대응이 서로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연금의 최우선 과제는 증시 부양이나 단기 수급 방어가 아닌 '노후 자금의 장기 수익성 확보'에 있음을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 따라서 기금운용의 지배구조 정비 역시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개인투자자의 불만과 정치권의 요구가 기금운용위원회의 의사결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반복되는 한, 자초한 함정은 형태를 바꿔가며 계속 재발할 것이다. 목표비중 조정의 요건과 절차를 사전에 규정으로 못 박아 임의 변경의 여지를 줄이는 등,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허용범위와 조정 기준을 사전에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시장의 불필요한 추측과 불안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한편, 거대한 연기금의 수급 움직임 속에서 개인투자자들 역시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냉정한 투자 원칙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의 리밸런싱 매도는 자산배분 비율을 맞추기 위한 기계적 절차에 불과할 뿐 기업의 본질적 가치가 훼손된 것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단기 수급 변동에 흔들려 '패닉셀(Panic Selling)'에 나서기보다, 스스로의 자산배분 기준을 정립해 분할 매매로 대응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고래는 함부로 방향을 틀지 않는다. 급선회할 때 자신이 일으킨 파도에 스스로 휩쓸린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거대한 몸집과 시장 쏠림이라는 구조적 한계는 앞으로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하지만 원칙을 저버리고 목표를 사후에 고쳐 쓰는 임기응변은 연기금이 스스로 자초한 오판이다. 파도가 칠 때마다 항로를 바꿀 것이 아니라, 어떤 풍랑도 견뎌낼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세우고 이를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그것만이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 거대한 고래가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지지 않고 거친 바다를 헤쳐 나가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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