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살충제 계란', 철학 아닌 시스템 문제

세종=민동훈 기자
2017.08.23 03:30

“박근혜정부나 문재인정부나 ‘먹거리 행정’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만약 전 정부때 살충제 계란 사태가 터졌으면 촛불시위는 물론이고 ‘이게 나라냐’라는 소리도 나왔을 겁니다.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높으니 관료들도 그냥 묻어가는 거지요.”

이른바 ‘살충제 계란’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들은 식품전문가의 말이다. 살충제 계란 사태는 정권의 철학이 없어 생긴 게 아니라고 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관료와 일처리 관행은 그대로인 게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수장은 문재인 정부 사람으로 교체됐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속한 수습, 정확한 발표를 수차례 지시했지만 손발이라 할 수 있는 정부조직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소용이 없었다.

관료들은 다급하기만 했다. 엉터리 전수조사가 단적인 예다. 검사를 위해 필요한 시약도 확보하지 못한 채 시간에 쫓겨 주먹구구식 검사를 했다. 이 때문에 420개 농장에 대해 재검사를 해야 했고, 3개 농장에서 살충제 성분이 나왔다.

살충제 계란에 대한 경고가 있었지만 정부는 안일했다.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난해 9~10월, 올해 4~5월 살충제 관련 점검을 했는데 문제가 크게 발견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대로라면 관료들이 사안의 심각성을 몰랐거나 알면서 축소보고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부처간 칸막이의 폐단도 여전했다. 생산을 맡은 농식품부와 유통 분야를 책임지는 식약처는 연일 엇박자였다. 농식품부는 “이미 사 놓은 계란을 먹어도 되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식약처에 물어보라”고 했다. 농식품부가 언론에 7개 농장의 계란식별코드를 수정해 달라고 한 것도 식약처의 현장 추적 조사결과를 늦게 받았다는 게 이유였다.

문재인정부가 적폐 청산을 말하지만 청산의 대상은 단순히 지난 정권의 인사만이 아니다. 부조리한 관행, 기형적인 조직, 부처간 책임 떠넘기기 등과 같은 시스템도 뜯어고쳐야 한다. “이게 나라냐”라는 국민의 질문에 문재인 정부도 자신 있게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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