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준위 방폐장, 해저 암반도 고려하자

김경수 (재)사용후핵연료관리핵심기술개발사업단 단장
2025.02.21 05:30
김경수 (재)사용후핵연료관리핵심기술개발사업단장

원자력을 이용하는 국가들은 1970년대부터 사용후핵연료 지하 처분시설 마련에 힘써 왔다. 초기에는 관리주체가 시설 부지를 지정하거나 전국적인 지질조사를 실시해 후보지를 좁히는 방식이었다. 최근에는 지방정부가 방폐장을 유치하는 방식이 주류가 되고 있다. 40년 넘게 사회적 갈등과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이 이어졌고 여러 나라가 마침내 이 어려운 숙제를 해결해 가고 있다. 핀란드는 내년부터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폐장을 운영할 예정이며 스웨덴은 올해 초 건설에 착수했다. 프랑스는 인허가 심사 중이며 스위스와 캐나다도 최종 부지를 확정했다.

그러나 원전 이용 세계 5위인 우리나라는 고준위 방폐장 마련을 위한 준비 과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처분기술 개발은 1990년대부터 시작됐고 최초의 법정 기본계획은 2016년에야 수립됐다. 기술적인 준비 과정과 달리, 정작 정책 실행을 위한 법제화는 더디게 진행됐다. 20대 국회부터 논의가 시작됐으나 복잡한 이해관계로 합의가 어려웠다. 다행히 10년 가까운 논의 끝에 특별법 제정이 눈앞에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특별법의 구체적 실행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무거운 과제는 부지 선정 절차를 시작하는 것이다. 방폐장을 유치하려는 지자체장은 법안에 따라 지역 주민과 지방의회의 동의를 얻어 신청할 수 있다. 정부는 13년 안에 부지를 확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는 방폐장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결국, 국민과 지방정부가 방폐장의 안전성을 확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이러한 신뢰 형성을 위해서 사용후핵연료관리핵심기술개발사업단을 비롯한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이해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기술과 인문학적 관점을 아우르는 대화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다.

필자는 방폐장 유치를 둘러싼 지역사회의 거부 반응(NIMBY)을 완화하고 사회적 수용성을 대폭 높일 수 있는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이에 대한 방안으로 영국의 접근 방식이 주목할 만하다. 현재 영국에서는 서해안의 컴브리아와 동해안의 링컨셔 등 3개 지역이 방폐장 유치 경쟁에 참여하고 있으며 지난 1월 말에는 전담기관이 각 지역의 심층 조사구역을 발표했다.

영국은 통상적으로 부지 내에 모든 시설을 건설하는 방식 대신 부대시설은 육상에 두고 방폐장은 인근 바다 밑 암반층에 건설하며 두 구역을 지하 터널로 연결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특히, 이 해저 방폐장 모델은 지역사회와 협의를 거쳐 마련되었다는 점은 부지 선정을 서둘러야 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 방식의 장점은 첫째, 해저 암반은 육지 암반과 연속성을 가지며 지하수의 흐름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방사성 물질의 누출 위험을 사실상 차단할 수 있다. 둘째, 해저는 인간 생활권이 아니므로 육상 생태계와 지역 주민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고 셋째는 방폐장이 육상부에 있을 때보다 먼 거리에 위치하게 돼 주민들의 심리적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우리가 장기간에 걸쳐 안전한 방폐장 기술을 개발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제도적, 국민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더불어 그 기술을 바탕으로 국토의 제한된 공간에서 사회적 갈등을 줄이며 입지 수용성을 높이고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안까지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시간을 쓴 만큼 이제는 신속하면서도 유연하게 나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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