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일 4년의 임기를 마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의 재임기간에 한은의 존재감은 뚜렷했다. 금리만 올리고 내리던 조용한 중앙은행에서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내는 싱크탱크로 변모했다. 금리결정엔 항상 배경설명이 뒤따랐고 포워드가이던스, 점도표도 도입했다. 한은이 던진 구조개혁 페이퍼엔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이창용체제에서 가장 상징적 변화는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이다. 이 총재는 2022년 취임 첫해부터 금리경로에 대한 조건부 신호를 줬고 이후에는 금통위원들이 열어둔 최종금리 수준과 인원수를 공개해 시장의 해석 폭을 좁혔다.
올해 2월에는 한 걸음 더 나가 6개월 후 기준금리에 대한 조건부 전망을 점도표 형식으로 처음 공개했다.
대중과 거리도 확실히 좁혔다. 한은은 이 총재 취임 직후인 2022년 5월 블로그를 개설하고 유튜브·SNS(소셜미디어)를 통해 기준금리 결정배경과 금융시장 흐름을 더 쉽게 설명하는 콘텐츠를 늘렸다. 조직 내부적으론 타운홀미팅과 주간 현안포럼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며 경영현안과 주요 이슈에 대한 내부소통을 강화했다.
통화정책 운용방식도 한층 입체적으로 바뀌었다. 이 총재는 금리만이 아니라 외환시장 개입, 거시건전성 조치, 자본이동 관리 등을 아우르는 통합정책체계(Integrated Policy Framework·IPF)를 강조했다. 기자간담회에서도 가계부채와 주택시장 흐름을 거시건전성 정책의 효과와 함께 설명했고 외환·금융시장 변동성까지 함께 고려하는 방식이 뚜렷해졌다.
의제 폭도 넓어졌다. 한은의 관심사는 금리와 물가에만 머물지 않았다. 인구 및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를 반영한 잠재성장률 재추정과 구조적 해법마련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고 △저출생·고령화 △지역균형발전 △교육개혁 △주택금융 △계속근로 등 '구조개혁 연구시리즈'를 통해 장기과제를 공론화했다. 중앙은행이 한국 경제의 싱크탱크로 거듭난 순간이다.
위기국면에서 '소방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취임 직후 고물가 대응을 위해 2차례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포함, 기준금리를 3.50%까지 신속히 끌어올리며 긴축의 고삐를 죄었다. 적극적 통화정책으로 한국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전세계 주요국 중 가장 먼저 2% 물가안정 목표를 달성했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가계부채비율 하락전환도 이끌어냈다.
반면 '레고랜드 사태'나 '12·3 비상계엄' 같은 시장의 충격이 발생했을 때는 과감한 유동성 공급과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로 대응했다. 물가관리와 시장안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여러 차례 대내외 위기를 정면돌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무대에서 존재감도 커졌다. 이 총재는 국제결제은행(BIS) 글로벌금융시스템위원회(CGFS) 의장직을 맡고 잭슨홀미팅과 신트라포럼, 국제통화기금(IMF) 고위급 무대에 잇따라 참여하며 한은의 발언권을 키웠다.
내부적으로도 신임이 두텁다. 지난해말 한은노조 설문조사에서 이 총재 재임 중 '한은의 국내 위상이 높아졌다'는 응답은 64%, '국제위상이 높아졌다'는 응답은 62%에 달했다. '정책실적이 우수하다'는 평가는 61%, '구조개혁 논의가 한국의 경제정책 방향수립에 도움이 됐다'는 응답은 53%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