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주가는 고공 행진하며 민간소비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 경제는 여전히 구조적으로 어렵다. 통상정책의 갈등 속에서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대항전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첨단기술 자립에 중점을 둔 강력한 산업 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국은 AI, 로봇 등 신형 공업화 전략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동원하며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일본, EU 등도 정책금융을 확대하며 기술산업 강화와 첨단산업육성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대내적 상황도 여의치 않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철강, 화학 등 주력산업의 부진이 심각하다. 일자리 창출도 정체되며 잠재성장률은 2% 아래로 낮아진 상황이다. 국내 기업들은 금융지원 격차와 기술 패권 경쟁의 이중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위기 국면에서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원을 어디 배분하느냐가 경제의 지속 성장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우리 금융은 산업보다 부동산 대출 위주의 순환이 비대화됐다. 부동산 부문은 전체 민간 신용의 절반에 달한다. 제조업으로의 자금 유입은 크게 늘지 못했고, 혁신 R&D 투자는 선진국의 절반 수준을 하회한다. 금융이 생산보다 자산 증식에 쏠리면서 실물경제와 연계가 약화되고 장기성장력 제고에 기여하지 못한 부분은 뼈아프다. 금융산업의 생존과 국가경쟁력 회복을 위해서라도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은행의 체질 개선은 불가피하다. 과거의 담보 위주 영업방식에서 벗어나 기술가치와 미래 성장가능성을 꿰뚫어 보는 전문적 선구안을 갖춰야 한다. AI와 데이터 기반의 기업 심사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기업이 보유한 IP와 기술력을 정교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단순한 대출을 넘어 지분 투자까지 아우르는 복합 금융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기업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맞춤형 자본 공급과 컨설팅 등의 솔루션이 여기 포함될 수 있다. 리스크 관리의 혁신도 필요하다. 혁신기술을 갖춘 기업은 높은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는 만큼 리스크를 더 감수해야 하는데, 내부 시스템이 이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성과평가체계의 재편이나 사후 모니터링 시스템의 강화 등 관리체계 정교화가 필요하다.
정부 역시 금융권의 과감한 행보를 뒷받침할 제도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국가전략기술 분야 투입 자금에 대한 위험가중치 추가 완화 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리스크에 대한 안전판과 면책 제도 등의 도입도 필요하다. 대규모 자금이 위험도가 높은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금융 데이터 허브' 조성도 필요하다. 각 부처가 보유한 산업 기술 데이터와 금융 데이터를 연계해 기업의 미래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생산적 금융의 성패는 일회성 자금 투입이 아닌 민관협력을 통한 지속 가능한 생태계 구축에 달려 있다. 금융이 자산 가격을 좇는 '지대 추구'에서 벗어나 실물 경제의 혁신을 이끄는 '성장 촉매제'로 거듭날 때 우리 경제는 다시 한번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