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전선업계 '담합 본산' 오명 벗으려면

기성훈 기자
2016.09.13 12:02

"그간 담합 업체에 포함 안 된 회사가 있긴 한가요? 과징금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불신'이에요".

최근 국내 전선업계가 처한 현실에 대해 한 대형업체 임원이 한 말이다. 전선업체 임직원들은 요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말한다. 구리(동) 가격 하락에다 건설경기 위축 등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보다 신뢰 추락이 더 이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최근 몇 년째 전선업계는 담합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지난 2012년 공정위원회의 제재 조치에 따라 한국전력과 관련 업체들 간 손해배상 소송이 대법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많은 전선업체에 부과된 수십억∼수백억대에 이르는 과징금 납부도 '현재진행형'이다.

국내 전선업계 담합이 만연하게 된 것은 과점 구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대형 3~4개 기업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는 시장이다. 여기에 다수의 일반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규모의 업체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하청을 받는 정확한 소규모 업체 수는 파악하기조차 힘들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전선업체들로선 억울한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한전 등 수요처는 한정돼 있고 품질보다는 가격이 중시되는 입찰 구조가 기업들을 담합의 길로 몰고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전선업체 담합 수법은 여러 업체가 입찰에 참가해 낙찰자, 낙찰순위, 투찰가격, 물량배분 등을 '짬짜미'한다. 한 업체가 낙찰 받아 다른 업체들의 물량을 보전해 주는 방식이다.

전선업계의 주장처럼 최저가입찰제를 손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건 업계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다. 새로운 담합 행위가 적발되면 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당위성을 가질 수 없다. 고객(소비자)의 피해를 바탕으로 자기 배를 채우는 비열한 행위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마당에 어떤 주장도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최근 전선업체들은 영업 직원들의 윤리 교육을 크게 강화하고 있다.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보여주기식의 일회성 이벤트로 그친다면 신뢰회복의 길은 요원하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려면 몇 곱절 힘든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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