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훨훨 나는 日경제 웃지 못하는 이유

김신회 기자
2017.11.22 03:05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일본 금융사에서 20년 전인 1997년 11월은 ‘악몽의 달’로 통한다. 그해 11월3일에는 산요증권이 파산했고 17일에는 홋카이도척식은행이 무너졌다. 당시 일본 4대 증권사로 꼽힌 야마이치증권이 24일 문을 닫은 건 결정타였다.

1997년은 일본 경제에 ‘악몽의 해’이기도 하다. 97년을 정점으로 이듬해부터 경제지표가 곤두박질쳤다. 지금까지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디플레이션 악몽이 이때 시작됐다.

20년 전에 비하면 일본 경제는 모처럼 훨훨 날고 있다. 16년 만에 가장 긴 성장세 속에 증시는 26년 만에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마침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실제로는 경계론이 더 지배적이다. 당장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기대만 못해서지만 20년 전 악몽을 기억하는 이들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일본이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근 부정 파문에 휩싸인 일본 기업이 한둘 아닌 걸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야마이치증권은 회계부정으로 100년 역사를 접었다. 올림푸스(2011년), 도시바(2015년), 후지제록스(2017년)도 비슷한 부정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하나같이 실적지상주의가 부정을 부채질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시바에서는 분기 마감을 사흘 남기고 영업이익을 120억 엔(약 1177억 원) 늘리라는 압력이 있었을 정도다.

이밖에 고베제강, 닛산자동차 등은 올해 제품 검사 부정 파문을 일으켜 일본의 제조강국 위상을 뒤흔들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야마이치증권 폐업 20주년을 되짚은 기사에서 개혁이 늦은 게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미국 연기금을 비롯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본 경제의 거품이 터진 직후인 1990년대 초부터 일본 기업의 경영·재무 불투명성을 날카롭게 꼬집었지만 곧이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1980년대 고도 성장기에 누적된 폐단이 결국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지금도 바뀐 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아베 총리는 경기부양책(아베노믹스)의 세 축, 이른바 ‘3개의 화살’ 가운데 하나로 구조개혁(성장전략)을 들었지만 실질적인 개혁을 계속 미루고 있다. 고통스러운 개혁에 저항이 만만치 않아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기업의 이익 창출 능력을 키워 경제 전체에 돈을 돌게 하는 수단으로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추진해왔다. 일본 기업에서 암묵적인 묵인과 은폐 속에 부정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과거의 폐단을 끊는 고통스러운 구조개혁을 감수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성장은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한다. 21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주년을 맞은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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