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슈레마상’과 ‘방커머튽’

김고금평 기자
2017.12.05 06:48

어느 날, 중학교 1학년 딸이 묻는다. “아빠, ‘슈레마상’이라고 알아?” “뭐라고?” 뭔 외계어인가 싶어 되묻자, 딸이 “슈퍼 레알 마음의 상처”라며 깔깔 웃는다. 축약에 대한 10대들의 기호를 모르는 바 아니나, 솔직히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한글과 조합이 어색한 영어의 혼용으로 아이들은 자기식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게 재미났는지, 딸의 자기자랑 식 축약은 계속 이어졌다. “어제, 엄마한테 ‘폰압’(핸드폰 압수) 당했거든. 그래서 지금 ‘슈레마상’이야.”

자식인데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한국 사람인데 한글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아이랑 대화를 계속 하다간, 바보 취급 당하기 십상이었다.

축약이 ‘리스닝’(listening)에 대한 문제라면, 야민정음은 ‘라이팅’(writing)에 대한 문제다. 요즘 유행하는 또 다른 ‘언어파괴’의 일종인 ‘야민정음’은 글자를 비틀어 읽는 방식이다. 이렇게 유행하다간 시험 문제로 만날지도 모른다. 다음 한글을 ‘우리말’로 풀어보시오. ‘방커머튽 으어뚠어뚠’. 답은 ‘방귀대장 뿡뿡이’다. “왜, 도대체 왜?”라고 묻는 어른들은, 제2외국어로 ‘야민정음’을 수강해보길.

과정은 이렇다. ‘방커머튽’에서 커는 ‘귀’자와 닮았다. ‘튽’은 한자 장(長)자와 비슷하다. ‘으어뚠어뚠’은 90도 꺾어서 보면 ‘ㄸ’이 ‘ㅂ’같고 ‘ㅜ’와 ‘ㄴ’의 결합이 또 ‘ㅂ’같아 자세히 보면 ‘ㅃ’처럼 읽힌다. ‘어’는 뉘면 ‘웅’이다.

세종대왕은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말(음성)이 서로 맞지 않아~’ 한글 28자를 만들었는데, 500여 년이 지난 지금 세대들은 ‘표준어가 너무 식상해 변칙과 응용이 필요한 바’의 이유로 한글에 갖은 묘기를 부리기 시작했다.

한때는 ‘레알’, ‘셀카’ 등 외국어를 통째로 갖다 쓰며 ‘한국어화’하기 바빴고, 이도 식상해지자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같은 줄임말로 재미 붙이다, 이젠 한글 자체를 ‘다르게’ 보는 창의력(?)에 눈뜬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상상의 나래가 펼쳐질지 젊은 세대들은 호기심으로, 어른들은 우려의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서울대 박진호 교수 등 찬성론자들은 시대 변화에 따라가는 언어의 변형을 발랄한 놀이문화로 규정하며 사회 문화 현상을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든다는 점을 역설한다. 비판론자들은 언어가 사상을 규정하기 때문에 일탈의 언어가 그릴 세계관을 우려한다.

언어를 비틀어 보는 새로운 시각은 창조나 상상력의 원천일 수 있다. 실제 야민정음은 기발함을 넘어 과학적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알고 비트는 것과 모르고 난도질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어이’라는 뜻을 알고 ‘어의없다’로 쓰면 ‘유희’지만, 모르고 쓰면 ‘무식’일 뿐이다. 그것은 글자 하나의 차이가 아니라, 사물을 인식하는 사고와 통찰의 차이로 귀결된다.

예능 만능시대에도 과학자가 필요하듯, 만화책에 길들여도 인문학을 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더 나은 창의력을 위해 기본을 밟아야 하는 명제는 인공지능 시대에도 불변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