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글로벌 흥행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거장 임권택 감독의 혜안을 되새기게 한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방탄소년단(BTS) 의 빌보드 석권과 맞먹는 가슴 벅찬 일이다. 푼돈(?) 200억원을 투자한 넷플릭스는 불과 2주 만에 시가총액이 13조원 늘었으니 한국을 향해 절이라도 해야 한다. 한국 콘텐츠산업이 미국 할리우드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블룸버그통신의 과장섞인 평가가 싫지만은 않다.
그러나 '오징어게임'의 흥행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도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의 흥행수익을 넷플릭스가 독식하며 제작사는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갖는다는 식이다. 국내 제작사들이 글로벌 OTT(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의 하청기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관도 있다.
넷플릭스의 계약구조에 대한 비판은 틀린 말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초기 제작비를 대고 IP(지식재산권)와 판권, 해외유통권을 독점한다. 글로벌 흥행을 했다면 그에 비례해 수익을 나눠주는 게 인지상정일 수 있다. 넷플릭스가 '킹덤' 'D.P.' '오징어게임' 같은 연쇄 흥행작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동안 국내 통신망을 공짜로 사용한 데 대한 비판도 거세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곁가지다. 콘텐츠 계약은 상호 원해서 한 것이고 망 사용료에 대한 이견은 소송에서 곧 가려진다. 정작 콘텐츠업계는 넷플릭스식 콘텐츠 수급방식에 환호한다. 충분한 제작비와 마진을 보장하고 실패하더라도 리스크를 일절 지지 않는 방식이어서다. 더 주목할 것은 다양성과 창의성을 보장하는 제작여건이다. 넷플릭스는 제작비를 선불로 주고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이는 더 많은 제작사가 넷플릭스와 손잡고 싶어하는 요인이다. 황동혁 감독이 "'오징어게임'은 오직 넷플릭스에서만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는 '오징어게임'을 2008년 구상했다. 10년 묵은 그의 대본은 그동안 투자자와 배우들에게 치이기만 했다. 스토리가 괴이하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작품, 지나치게 잔혹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지상파방송에서도 불륜과 폭력이 난무하는 막장드라마가 연일 쏟아지는 상황에서 '오징어게임'에 대한 혹평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최근 국내 OTT들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연간 수천억 원을 쓰니 자금력 부족을 탓할 수도 없다. 결과론이지만 황 감독의 제안을 거들떠보지 않은 제작사나 플랫폼들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반대로 넷플릭스가 없었다면 지금의 '오징어게임'이 빛을 볼 수 있었을까 되물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오징어게임'의 흥행은 국내 OTT의 위기론과 맞닿아 있다. 결국 국내 플랫폼의 작품을 보는 눈, 폐쇄성과 고정관념을 지적해야 옳다. 넷플릭스는 국내 제작환경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소재를 과감히 받아들였다. 반면 국내 OTT는 여전히 다양한 형태의 제약을 받는다는 지적이다. 실제 군내 폭력, 자살 같은 치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D.P.'를 국내 OTT에서 과연 다룰 수 있었겠느냐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국내 플랫폼이 '오징어게임'을 제작했다면 주인공 이정재와 여배우의 로맨스, 각종 브랜드 PPL(협찬광고)로 범벅됐을 것이라는 일각의 자조도 있다. 넷플릭스가 등장한 후 한국 제작업계와 플랫폼 간의 불공정 관행이 개선됐다는 것도 불편한 진실이다.
국내 OTT는 이제 '오징어게임'과 같은 생존경쟁에 접어들었다. 당장 연내 디즈니플러스, 아마존, 애플TV 등이 몰려온다. 이들에 비해 국내 OTT는 자본력이나 글로벌 네트워크, 콘텐츠 수급에서 열세다. 그렇다고 내수 서비스의 한계만 탓할 게 아니다. 그럴수록 열린 제작환경과 차별화한 IP로 대응해야 한다. 경쟁 OTT끼리 연합해 해외에 공동진출하자는 이상론을 얘기하기보다 콘텐츠의 옥석을 가리는 눈과 금기에 도전하는 포용력이 한국 OTT의 생존 해법임을 '오징어게임'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