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KSLV-II) 발사를 며칠 앞두고 일본 과학기술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일본 문부과학성에서 우주 개발과 핵융합 등 과학기술 정책을 설계했던 아난 케이이치 주한일본대사관 1등 서기관(과학관). 그에게 일본의 우주 탐사 목적과 전략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갈 길은 멀지만 누리호 다음 화두는 '우주 탐사'라고 입을 모은다. 우주 발사체에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을 탑재할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1970년 우주 발사체를 자력 발사했고, 차별화 전략으로 현재 소행성 탐사 분야에선 우주최강국 미국을 앞서 있다. 그 지점에 한국이 참고할 내용이 있다.
아난 과학관이 언급한 일본의 우주 탐사 목적은 '새로운 지식의 창조와 우주 공간 내 일본의 활동 영역 확대'였다. 언뜻 단순한 구호로 들릴 수 있지만 역사적 맥락과 함께 보면 다소 긴장감을 느껴야 하는 말이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 때부터 과학선진국에 유학생을 보냈고 단순 지식 답습을 넘어 지식을 만드는 생산 방법까지 도입하고자 했다.
지식 수입국은 만들어진 길만을 따라가야 하지만 지식 생산국은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주도권을 쥔다. 과거 기록을 보면 한국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본에 열세였다. 1592년 임진왜란과 1910년 국권피탈에 과학기술력 차이가 결정적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은 2012년 일본항공우주개발기구(JAXA)의 연구개발 범위를 평화적 목적으로 한정하던 법 조항을 삭제했다. 지난 4월 일본 방위성은 우주작전국을 창설하기도 했다. 우주를 과학기술로 한정하지 않고 안보와 경제·산업 영역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등 우주강국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우주는 국가 지도자가 직접 챙기는 프로젝트다.
한국도 늦었지만 우주로 가는 길을 열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누리호 1차 발사 실패 요인을 2개월 만에 파악하고, 2차 발사 당시 예기치 못했던 센서 결함을 단 50시간 만에 해결했다. 지식을 단순 수입하지 않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지식을 다듬고 창출한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는 부처별 산재한 우주 역량을 한데 모으고, 지역균형발전 논리로 축소된 우주 전담기구 논의를 '어디로'(지역)에서 '왜·어떻게'(철학)로 확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