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의 필즈상 수상은 한국 수학계의 일대사건이다. 4년에 한번씩 주는, 그것도 40세미만 수학자에게만 수여하는 노벨상보다 받기어려운 상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국적과 병역 논란이 불거졌지만 국내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그의 수상이 한국 수학계의 쾌거임은 분명하다. "열여덟에 테니스 라켓을 잡았는데 스무살에 윔블던을 우승한 것"이라는 미국 수학 전문매체의 평가도 나온다. 다만 허교수가 필즈상을 거머쥐기까지의 과정은, 한국 교육의 현실을 투영하며 제도권 교육이 자성하는 계기로 삼아야한다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사실 허 교수는 입시위주, 문이과로 구분된 한국제도권 교육에서 낙오자로 평가된다. 스스로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을 곧잘했지만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이 그를 학창시절 수포자로 소개하기도 했다. 수상 간담회에서 그는 "초등학생 때 구구단 외우길 힘들어했다는 얘기가 와전됐다"고 밝혔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수학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고 여운을 남겼다. 주입식 교육에 적응하지 못했음을 자인한 것이다.
도리어 그는 문학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시인을 꿈꾸며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학을 통해 다진 언어 표현력은 수학적 역량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허 교수가 수학계 오랜 난제를 풀고 필즈상을 수상하게된 배경도 융합적 사고 덕분이었다.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평가되는 대수기하학과 조합론을 연계해 10여개 난제를 풀어낸 원동력도 문학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사고력을 확장한 결과다.
허 교수 역시 현실과 타협했다.서울대에 입학하기위해 1년간 입시수학 과외를 받았다. 당시 과외선생이던 한 대학교수는 "주어진 시간내에 문제를 많이 푸는게 수학을 잘하는 기준인데 허교수는 인상적이지 않았다. (서울대 합격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허 교수의 수학적 사고가 결코 입시용 문제풀이를 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허 교수는 인생의 전기로 서울대 재학시절 석좌교수로 온 일본의 세계적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와의 만남을 꼽는다. 히로나카 교수에게 배운 특이점 이론은 허 교수가 미국에서 박사과정에 있을 때 리드추측을 해결하는 단초가 됐다고 한다. 다만 노 교수와의 만남 이전에 그의 역량과 잠재력을 믿고 기다려준 허 교수 부모의 교육방식과 인내심이 더 눈에 띈다.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채 시인이 되겠다는 자식의 뜻을 수용하고 자퇴를 허락해 줬다. 다시금 경로를 우회해 대학에 들어갔지만 전공인 물리천문학에 흥미를 못느끼고 D와 F학점이 즐비할 정도로 6년간 방황을 거듭한 그를 부모는 묵묵히 응원했다. 물론 통계학자인 아버지와 문학교수인 어머니의 지적소양도 뒷받침했을 것이다. "먼길 돌아 제 일과 적성을 찾았다"는 허 교수의 말처럼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학문을 모색하도록 아낌없이 지원했다.
확실한 것은 허 교수 부모의 행보가 오늘날 상당수 학부모들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의대, 로스쿨로 자녀들의 진로를 정하고 뒤쳐질까 조바심내며 선행학습을 위해 대치동 학원가를 들락거리고, 자녀들 셔틀하는 것을 경쟁력이자 의무로 생각하는 부모들이 적지않다. 그런 점에서 허준이는 창의력과 자율성 보단 당장 성적에 목메는 한국적 교육 현실에서 보기드문 성공사례가 분명하다.
필즈상 수상보도가 나가자 일부에서 이제 필즈상을 목표로 하는 학원이 생길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이미 대치동 학원가를 비롯해 서울 수도권에만 30여곳의 '필즈학원'이 성업중임을 알게됐다. 우리 사회가 반드시 허준이 같은 인류발전에 기여할 천재만을 필요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곳곳에 숨어있는 제 2, 제3의 허준이들이 오늘도 학교 수업을 마치고 정해진 인생경로를 위해 필즈학원에서 문제풀이에 몰두하는 광경을 떠올리니 못내 씁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