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시대정신과 연합대학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교무처장)
2024.02.16 02:03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시대정신이 뭐냐고 물으면 연대와 협력이라 하겠다. 과거보다 적은 수의 사람으로 지금 누리는 삶의 질을 유지하려면 각자의 능력과 생각을 존중하면서 사회의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도 연대는 힘이 된다. 사람들은 '어려울 때 누군가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면 당장 현실이 어려워도 최선을 다하고 미래를 꿈꾼다. 저출생 문제가 그렇다. 아이를 낳아도 온 사회가 함께 보호하고 길러줄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면 누가 아이를 낳겠나. '함께 가자'는 연대보다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정글에서는 공멸만 남는다.

대학이 그렇다. 지금껏 대학은 가혹한 충원경쟁과 평가에 사로잡혀 '네가 아니면 내가 죽는다'는 제로섬게임을 했다. 연대와 상생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에 익숙하다. 머리로는 연대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내심 큰 대학에 먹힐 수 있다는 불안감이 많다. 학생감소는 피할 수 없는 상수(常數)다. 비상한 시기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는 길은 연대와 협력으로 비용은 줄이면서 교육과 연구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대안의 하나가 '연합대학'이다. '글로컬대학 30곳'에서 몇몇 대학이 '대학 통합'을 내세워 사업에 선정된 것도 이런 움직임에 불을 질렀다. 대학 간의 연대와 협력은 수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낮은 수준이 교육프로그램, 교수요원, 시설 등을 공동활용하는 '공유대학'이라면 높은 수준은 둘 이상 대학을 통합해서 하나의 대학을 만드는 것이다. 연합대학은 중간수준의 전략이다. 파트너대학들이 한편으로는 각자 정체성과 자율성을 유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단일 의사결정체계를 만들어 폭넓게 협력하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이 그렇다. 10개 독립캠퍼스가 하나의 이사회 시스템 아래 '느슨하게 연결'돼 대학 브랜드를 만들고 브랜드에 걸맞은 교육과 연구의 질을 유지하면서 세계적 대학이 됐다.

연합대학은 설립과 운영주체가 달라 국공립대학처럼 완벽한 통합을 꾀하기 어려운 사립대학이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다.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통합 거버넌스를 만들고 높은 수준의 연대와 협력을 추구하지만 파트너대학들은 독립성과 정체성을 가지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경계할 것은 '무늬만 결합' 또는 '장부상 연합'이다. 가짜연합은 평가자의 눈을 속여 사업수주에 성공할 수는 있어도 진정한 경쟁력 강화나 특성화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연합대학이 성공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연합대학으로서 강력한 비전이다. 본래 대학들은 고유함과 자율성을 앞세우고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속성이 있다. 이러한 원심력을 극복하고 연합대학으로서 구심력을 가지려면 참여대학들이 공유하는 교육과 연구의 지향점으로서 '살아움직이는' 비전이 필요하다.

아파트 브랜드처럼 사람들에게 각인될 대학 브랜드를 창출해야 한다. 브랜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깥으로는 각 파트너대학에서 이뤄지는 교육과 연구의 품질을 보증하고 내적으로는 연합대학에 대한 소속감과 자부심을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연합대학을 유지하는 규정과 제도를 분명히 갖춰야 한다. 파트너대학들에 공통으로 적용할 사항과 각 대학이 자율로 정할 수 있는 사항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의 대학을 표방하는 공통규정이 있을 때 연합대학은 독자적으로 대외교섭, 정부사업 참여, 대학평가 및 공시단위로 인정받을 수 있다.

각자의 제도, 관행에 따라 움직인 대학들이 하루아침에 연합대학이 되기는 어렵다. 구성원이 소속감, 일체감, 공동체성을 느끼면서 대학 비전, 사명, 운영체계, 책임과 역할을 학습하고 내면화하는 것이 필수다. 이를 끌어내는 것은 총장의 리더십이다.

연대와 협력은 시대정신이 됐다. 문제는 제대로 하느냐다. 변화에 둔감하면 대학도 기업처럼 죽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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