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는 이제 게임이 됐다. 내 편과 네 편을 나누고 오직 승리를 위해 돌진하는 스포츠게임이 됐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이겨야만 하는 국가대표 대항전과 다르지 않다. 관객과 중계석에는 제 편을 응원하는 함성이 넘쳐난다. 우리 편 반칙에는 너그럽고 상대편 실수는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미디어 플랫폼에는 물 만난 고기처럼 정치콘텐츠가 넘쳐난다. 정치콘텐츠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 라디오, TV 등 전통미디어보다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의 활약이 돋보인다. 특히 유튜브에선 정치비평 토크쇼가 인기다.
'진성호방송' '오마이TV' '신의한수' '매불쇼' 등은 저마다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면서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이런 콘텐츠는 대부분 게임화(gamification) 전략을 활용한다. 게임을 중계하면서 시청자를 관객으로 만든다.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애쓴다. 편을 가른 뒤 우리는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태도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게임이 된 정치비평의 그라운드에는 과도하고 과격한 플레이가 펼쳐진다. 그래도 승리를 쟁취하면 그뿐이다. 팬덤 관객을 끌어들이고 그들의 응원에 힘입은 정치콘텐츠의 게임화 전략은 때때로 정서적 동일화를 강조하면서 사회적 책무를 저버린다.
공중파는 적어도 겉으로는 정파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발언시간을 똑같이 배분하고 반론권을 보장하면서 객관적으로 사안을 파악할 수 있도록 안내하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라디오나 TV도 소셜미디어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더욱 과격해졌다.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한 김행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와 진중권 광운대 교수가 '가짜뉴스'를 두고 과격한 설전을 벌였다. 급기야 진행자가 마이크를 껐지만 방송에선 좀처럼 듣기 어려운 상호 비방이 계속됐다. 2주 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진 교수는 진행자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정치를 개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라는 발언에 대해 질문하자 여당의 부정적인 이슈만을 '자극적'으로 다룬다며 이의를 제기하다 생방송 도중 "이런 방송 못하겠다"며 불참을 선언했다.
정치를 스포츠게임으로 만든 콘텐츠들은 극단적 입장과 거친 표현으로 관객의 흥미를 끌어모은다. 하지만 토론의 결과는 분명하지 않고 책임소재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특정 인물이나 정파를 맹목적으로 지지하거나 비난하면서 감성적인 지지를 유도하지만 실질적인 정책논의는 부족하다.
게임화 전략은 속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를 제로섬게임으로만 몰고 가면 안 된다. 우리에게는 대립하는 두 정파만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수많은 준거집단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다. 승자독식의 게임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얼마나 담아낼 수 있는지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물론 게임은 경쟁의 법칙에 따라 작동한다. 그러나 게임의 궁극적 목적은 거기에 참여하는 구성원이 모두 즐거워야 한다는 데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로제 카유아는 게임을 '현실의 활동과 분리된 놀이'라고 했다. 경쟁의 결과에 따라 보상이 이뤄져야 하지만 정치는 현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게임과 달라야 한다.
객관적 사실과 논거, 과학적 예측과 이성적 논리,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런 태도로 토론을 거듭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정치를 게임으로 본다면 총선은 관객이 그라운드에 내보낼 선수를 뽑는 일이다. 수준 높은 관객은 성숙한 시민으로서 정치콘텐츠를 정확히 읽어내는 콘텐츠 리터러시의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정보와 관점을 얻는 통로로 정치콘텐츠를 활용하되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