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장애인 접근권에 대한 국가의 책임

김태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2024.12.23 04:10

대법원이 국가가 행정입법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장애인이 소규모 소매점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 것이 위법이라며, 소를 제기한 장애인 2명에게 각 10만 원의 손해배상을 인정했다(대법원 2024. 12. 19. 선고 2022다289051 판결). 지난 10월 23일 공개변론이 진행된 그 사건이었다.

편의점, 약국 등과 같은 소매점에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경사로 등과 같은 편의시설이 설치되어야 하는데, 1998년 제정된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에서는 바닥면적이 300㎡ 미만인 경우에는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후 2022년 4월에서야 바닥기준 면적을 50㎡ 미만으로 축소했다. 과거 기준에 따르면 상당수 소매점이 편의시설을 설치할 법적인 의무가 없었고, 휠체어 경사로와 같은 편의시설이 설치되지 않아 휠체어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소매점을 이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대법원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2008년 4월 무렵부터는 국가가 관련 규정을 개정하여 편의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있는 소매점의 범위를 확대하여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행정입법의무를 부담하고, 주출입구의 단차 제거나 경사로 설치와 같은 편의시설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설치가 가능하며 비장애인의 시설 이용에 어떠한 제한도 초래하지 않으므로 사회ㆍ경제적 혼란이나 비용을 고려하여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지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유보할 정당한 이유도 없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위와 같이 14년이 넘게 개선입법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법률이 행정입법을 통해 편의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있는 대상시설의 범위를 정하도록 재량을 부여한 취지를 현저하게 벗어나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행위로, 국가배상법이 정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한 행위에 해당하므로 국가가 장애인 원고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했다.

실무상 소송에서 공무원의 고의ㆍ과실이 인정되는 경우는 드문데, 더구나 행정입법의무 부작위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대법원이 인정했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한 판결이다. 대법원은 구체적으로 손해액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것인지를 고민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판결문에서는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국가배상의 경우 위자료 산정에 고려하여야 할 특수한 사정'으로 ① 행정입법은 별도 집행행위 없이는 그 자체로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변동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행정입법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권리침해는 추상적 수준에 그친다는 점, ② 행정입법은 상대방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지 않고 전체 국민을 수범자로 하므로 특정 집단 또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 행정행위에 비해 불이행에 대한 비난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점, ③ 반면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 상대방의 인적 범위가 과도하고 확대될 수 있는 점, ④ 행정입법의무 불이행이 위법하다는 판단 자체를 통해서도 사법통제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통상 대법원은 파기환송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판결 이후 경제적 이익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집단소송이 남발될 것을 우려해 대법원 스스로 10만 원이라는 기준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사법통제 측면에서 유의미한 금액인지 다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국가의 첫째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편의를 보장하는 것임을 확인해 준 판결로 큰 의미를 갖는다.

김태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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