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성범죄 피해자 60년만의 재심

김태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2025.01.23 04:15

1964년 18세 소녀가 성폭력을 당할 위기에서 자신을 지키려고 가해자의 혀를 1.5cm 물어 끊어낸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가해자는 여러 친구와 피해자의 집에 침입해 피해자의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피해자를 중상해로 고소했고 피해자는 가해자를 강간미수, 특수주거침입 및 협박으로 고소했다. 경찰은 피해자의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가해자를 강간미수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는데 검찰은 가해자를 석방한 후 강간미수혐의는 불기소하고 특수주거침입 및 협박죄만으로 기소했으며 오히려 피해자를 중상해죄 혐의로 구속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 수사관이 조사받으러 온 피해자를 아무 설명도 없이 독방에 구금하고 수갑을 채운 다음 검사의 신문을 받게 하는 등 위법수사가 자행됐고 법원에서도 피해자가 정당방위를 주장했으나 정당방위와 별다른 관계가 없는 성관계 경험 유무에 관한 감정이 진행되는 등 부당한 재판이 이뤄져 피해자는 끝내 중상해죄의 처벌을 받게 됐다.

60여년이 지나 피해자는 재심을 청구했다. '원판결, 전심판결 또는 그 판결의 기초된 조사에 관여한 법관, 공소의 제기 또는 그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의 재심사유가 문제 됐는데 원심은 피해자가 중상해죄로 기소된 후 사선 변호인을 선임해 재판을 받으면서 수사기관의 불법구금, 협박, 자백강요 등을 주장한 적이 없고 이를 증명할 객관적이고 분명한 자료가 제시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피해자의 진술만으론 재심사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피해자는 60세가 넘어 여성단체, 변호인의 도움으로 어렵게 재심을 청구했다. 자칫 영원히 피해자의 마음에 한으로 남을 뻔했는데 다행히 대법원이 피해자의 명예를 찾기 위한 노력에 화답했다. 재심청구인의 진술이 핵심 증거로서 신빙성이 있고 그에 부합하는 직간접 증거가 상당수 제시됐으며 그 진술과 모순되거나 진술내용을 탄핵할 수 있는 다른 객관적 증거가 없다면 재심의 심판을 받을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대법원 2024년 12월18일 자 2021모2650 결정).

재판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증거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형사재판의 재심은 유죄판결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의 비상구제절차인데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해자 진술 이외에는 뚜렷한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아 실제 재심을 받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판결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물론 아직 피해자가 갈 길은 멀다.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판단을 받아야 하며 실제 재심이 열리더라도 무죄판결이 내려질지 장담할 수 없다. 다행히 대법원은 이 사건이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과 가치관이 팽배하던 가부장적인 시대에 벌어져 당시 피해자에 대해 "청년을 불구자로 만들었다"는 사회의 비난여론이 있었던 사정, 과거 권위주의적 통치 등을 고려할 때 당시 재판과정에서 피해자가 수사기관의 불법행위를 정면으로 주장하지 못한 태도를 현재의 잣대로 이례적인 일로 치부해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고령의 피해자가 계속 건강을 유지하며 재심을 통해 끝내 자신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기를 바란다.

김태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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