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美 신용등급 강등이 의미하는 진짜 위기

권성희 기자
2025.05.20 13:35

무디스가 3대 신용평가사 중 마지막으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했지만 시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디스의 결정 후 첫 거래일인 19일(현지시간) 미국 증시는 하락 출발했다가 강보합 마감했고 미국의 10년물 국채수익률도 0.02%포인트 오르는데 그쳤다.

미국 국가부채와 재정지출 중 이자비용 비율/그래픽=이지혜

신용등급은 채권의 채무불이행 리스크에 대한 평가다. 하지만 미국은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는 한 달러를 찍어내서라도 부채를 갚을 수 있다. 달러에 대한 전 세계 수요는 견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기축통화 보유국인 미국엔 신용평가가 큰 의미가 없다. 이는 2011년 S&P와 2023년 피치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을 때 확인됐다.

따라서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은 미국 국채 보유가 좀더 위험해졌다는 의미라기보다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미국을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만들고 달러를 기축통화로 유지시켜 온 미국 시스템에 대한 신뢰에 균열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시스템에 대한 신뢰 위기는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이유로 꼽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된다.

미국은 매년 빠짐없이 재정적자를 내고 있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회계연도 2024년(2023년 10월~2024년 9월)에는 재정적자가 1조8300억달러로 3년째 증가세를 이어갔다. 이 재정적자는 국채 발행을 통해 메워지고 늘어나는 국채 발행은 국가부채로 쌓인다. 회계연도 2024년 기준 미국의 국가부채는 35조460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124.3%에 달했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늘어나는 국가부채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에 따른 기준금리 상승으로 미국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이자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회계연도 2025년에 미국의 이자 비용은 952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회계연도 2025년 들어 지난 4월말까지 정부 지출 중 이자 비용은 사회보장연금에 이어 두번째로 많았다. CBO는 현재 상태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미국 정부의 이자 비용은 10년 후인 2035년에는 연간 1조8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자 비용 증가가 재정적자를 악화시키고 이는 다시 국가부채를 늘리는 악순환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무디스는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평가하면서 3가지 조건을 달았다.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와 독립적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효과적인 통화정책, 헌법이 보장하는 삼권분립 유지 등이다. 무디스가 당연해 보이는 이 3가지 조건을 굳이 언급했다는 것은 역으로 과거 기본 상식으로 여겨지던 이 3가지 조건조차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일 수 있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미국 정부의 부채 증가 등 여러 요인으로 위협받고 있지만 미국 정부의 반복적인 셧다운(폐쇄) 위기도 달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데 한몫했다. 미국 의회가 부채한도 증액을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정부 예산안을 제때 통과시키지 못해 정부 지출이 중단될 가능성이 여러 차례 제기되며 의사 결정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노출한 결과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금리를 인하하라고 거듭 압박하는 모습은 연준의 독립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 대해 무디스가 삼권분립을 강조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최근 미국 정부의 예측 불가 행보로 인해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진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인리히의 법칙에 따르면 심각한 안전사고가 1건 일어나려면 통계적으로 그 전에 동일한 원인으로 경미한 사고가 29건, 위험에 노출되는 경험이 300건 정도 발생한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에도 미국은 여전히 별 타격없이 안녕하다. 하지만 경고가 쌓이며 미국에 대한 신뢰에 균열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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