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6월 '브레인코리아(BK21)' 사업이 처음 발표됐을 때 대학 사회에는 적지 않은 반향이 일었다. '연구중심대학'이라는 개념이 본격 도입됐고, 정책의 주변에 머물러 있던 대학원을 대상으로 연간 2000억 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하는 대형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이후 BK21은 단계별로 설계를 보완하며 4단계까지 이어졌고, 내년 5단계 출범을 앞두고 있다. 사업비도 1조 원대에서 3조 원에 가까운 수준으로 확대됐다.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사업이 지속된 것은 그만큼 필요성과 성과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BK21 사업의 목표는 분명했다.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하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 경쟁 기반 지원이라는 원칙이 도입됐고, 무엇보다 대학원생을 직접적인 지원 대상으로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학원생을 단순한 연구 보조 인력이 아니라 '학문후속세대'이자 '연구 파트너'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유도했다. 4단계 사업이 이어지는 동안 대학의 연구 성과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논문 수, 피인용 지수, 세계대학평가 순위 등 주요 지표에서 뚜렷한 상승이 있었다.
그러나 냉정히 보면, 이러한 성과가 세계적 수준의 대학원 체제 구축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현재 국내 주요 대학에서 연구 성과를 창출하는 교수들은 대부분 해외 대학원 교육이나 박사후연구과정을 거친 연구자들이다. 이는 우리 대학원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연구 실적은 늘었지만, 차세대 연구자를 길러내는 기반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연구중심대학의 경쟁력은 사람에서 나온다. 교수뿐 아니라 박사후연구원과 대학원생 등 예비 연구자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연구하고 성장할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한 연구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이런 점에서 BK21이 지향할 방향은 단기적인 연구 성과를 넘어 경쟁력 있는 학문후속세대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시스템 구축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 대학원 체제는 여전히 취약한 면이 있다. 학부 단계에서는 국가장학금 제도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대학원은 높은 등록금과 불안정한 재정 구조에서 교수 개인이나 연구실 재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대학원생 지원 제도가 마련되었지만, 범위와 수준에서 선진국과 격차가 크다. 이는 학업 지속성과 연구 몰입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학원 혁신을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도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간 BK21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지만, 개별 연구단 중심의 지원 구조는 대학원 전반의 체질 개선을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실제로 많은 대학이 대학원 조직을 운영하고 있지만, 독립성과 전문성에서 미흡하고 대학원생의 교육과 연구 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데에도 제약이 있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선진국은 대학원을 국가 경쟁력의 토대로 인식하고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대학원생을 핵심 연구 인력으로 보고 안정적인 연구 활동을 위해 생활비까지 지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대학원생 지원을 개별 교수의 노력에 맡기기보다 국가와 대학 시스템이 함께 책임지는 공적 영역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내년 시작할 BK21 5단계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창출하는 전환점이 돼야 할 것이다. 학과 단위의 전공 교육에 더해 대학 차원에서 학술적 글쓰기, 데이터 분석과 연구방법론, 연구 윤리, 국제 공동연구 역량 등을 체계적으로 함양하는 교육과정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대학원생의 연구와 생활, 진로, 마음 상담까지 아우르는 전주기 지원 체계도 검토할 시점이다.
대학은 과학기술과 산업 혁신의 출발점이고, 중심에는 연구자가 있다. 대학원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 BK21 5단계가 획기적인 대학원 혁신을 촉발한다면, 한국은 '연구 추격국'을 넘어 '연구 선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BK21은 차세대 연구자를 길러내는 대학원 선진화 프로젝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