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중심의 반도체 주식 주도로 주식시장이 상승하면서 반도체 주식에 대한 관심이 높다. ETF투자도 반도체에 집중되고 있어, 운용사들이 앞다퉈 반도체 ETF를 출시하고 있다. 그런데 '000채권혼합50'과 같은 상품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자산의 KODEX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50은 설정액이 6000억원을 넘어섰다. Tiger 테슬라채권혼합Fn이나 ACE 미국나스닥100미국채혼합50액티브같은 ETF들도 있다.
해당 상품들은 해당 주식, 혹은 지수와 채권에 5:5, 혹은 3:7로 분산투자하는 자산배분형 ETF이다. 반도체로 돈이 몰려드는 상황에서, 왜 채권 편입비중이 50%에 달하는 ETF가 인기를 끄는 것일까? 이유는 모두 알고 있는 퇴직연금 위험자산 투자한도 70% 때문이다. 이들 상품들은 위험자산 한도 70%를 넘어 주식/위험자산에 투자하고 싶은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출시된 우회 투자 상품들이다.
DC형 및 IRP 퇴직연금 계좌는 국내 상장주식 직접투자가 금지된 것 외에도 위험자산에 적립금의 최대 70% 까지만 투자할 수 있다. 나머지 30%는 반드시 안전자산으로 운용해야 한다. 이러한 직접적 포트폴리오 규제의 취지는, 한국의 계약형 퇴직연금은 독립적인 기금형 운영이 아니라서 가입자의 수급권 보호이다. 원금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의 의미이다. 당초의 취지에는 공감하더라도, 이미 가입자들이 적극적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현실과 크게 괴리된 상황이라서 제도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000채권혼합50'류의 상품은 제대로 된 자산배분 상품이라고 보기 어렵고 실제로는 위험자산 투자 한도를 우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봐야 한다. 위험자산 70% 한도를 채우고 5:5 분산투자인 상품에 30%를 투자했다면 실질적으로는 위험자산에 85%를 투자한 것과 다를 바 없다. Tiger 테슬라채권혼합Fn를 매수한 투자자는 테슬라에 9%(안전자산 30%의 30%)를 투자하기 위해 21%의 국채 투자를 억지로 떠안은 셈이다. 21%를 국고채 금리 방향성에 투자했다고, 개별주식에 9% 투자한 것이 안전해지는 것은 아닐 것같다. 자산배분 효과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채권 투자도 마찬가지다. 회사채에 직접 투자하면, 신용등급과 상관없이 모두 위험자산이다. 그런데 채권형 펀드를 통해 투자하면 구성에 따라 비위험자산 분류가 가능해진다.
국채나 미국채 ETF는 기초자산이 채권이라서 무위험자산으로 분류된다. 과연 미국채ETF가 안전자산인지도 의문이지만, 변동성이 매우 높은 '미국30년국채액티브'같은 ETF까지 안전자산으로 분류된다는 점은 허망하기까지 하다.
자본시장은 이미 충분히 복잡해졌고, 개인들의 DC 및 IRP투자는 거의 직접투자 수준으로 높아졌다. 그렇다면 위험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 왜곡된 형태의 상품을 양산하고 결과적으로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제한하는 규제는 빨리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