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토론이 선거 판세를 흔든 결정적 '트리거'(방아쇠)로 작용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드물지 않다. 1960년 9월 세계 최초의 선거 TV 토론회부터 그랬다.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는 당당한 태도와 호감형 외모로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의 표를 가로채 결국 제3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내에 첫 TV 토론이 도입된 1997년 제15대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두 아들 병역 면제 의혹(병풍 사건)에 휩싸인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도덕성을 전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집중 검증해 승기를 잡았다. 캐스팅보트를 쥔 중도·무당파 부동층이 토론을 보고 한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결과다.
요즘은 방송 토론회가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과 유권자들의 관심이 예전같지는 않은 것 같다. 이유는 여럿이다. 뉴노멀이 된 '팬덤 정치'와 '정치적 양극화'로 기계적 중립을 추구하는 TV 토론의 효용성과 매력이 갈수록 줄고 있다. 정치 공론장을 점령한 여야 진성 당원과 강성 지지층, 정치 고관여층은 레거시 미디어가 아닌 유튜브와 SNS 쇼츠에서 '확증 편향' 강화 욕구를 해소한다. 방송 토론은 상대 후보의 결정적인 실언와 실수를 찾아내는 기회 정도로 소비된다. 그렇다보니 정책 검증은 뒷전으로 밀리고 네거티브(흑색선전)와 인신 공격성 일방 주장이 난무하는 경우가 흔하다.
더 큰 문제는 그나마 후보들의 자질과 공약 검증 장치로 기능해 온 방송 토론 횟수가 확연히 줄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 기간 유권자가 알 권리를 충족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무대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셈인데 숫자로도 확인된다. 15대 대선 때 약 50차례 진행된 TV 토론회는 지난 2022년 20대 대선에선 4회(법정토론회 3회+기자협회 주관 1회)로 급감했다. 지난 2012년 대선 때는 법정 토론 3회만 겨우 열렸다. 지지율과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후보자들이 TV 토론을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사례는 갈수록 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라고 다를까. 선거전 내내 전국 곳곳에선 TV 토론 개최 여부와 방식, 참여 후보 범위 등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예선(당내 경선)은 물론 본선에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지지율 1위거나 현역 등 기득권을 가진 일부 후보들이 TV 토론을 거부하는 현상이 노골화했다. 16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토론회가 지역당 평균 1.2회에 그쳤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토론 거부의 제1 명분은 '네거티브 무용론'이지만 상대편의 공세를 막고 실점을 최소화해 지지율을 지키려는 방어적 선거 전략이다. 비신사적 축구 전술을 이르는 '침대 축구'란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백번 양보해 침대 축구는 '언더독'(Underdog)의 불가피한 생존 전략이라고 치자. TV 토론 거부는 사정이 다르다. 정책 토론과 검증이 사라진 선거는 '깜깜이·줄투표·무공약' 현상을 고착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한다. 묻지마 투표가 남발되는 지방선거에선 더 그렇다. 이런 이유로 법정 토론회를 규정한 공직선거법을 바꾸자는 제안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현행법상 대선 3회 이상, 국회의원·지방선거 1회 이상으로 의무화된 선거관리위원회 주관 토론회 의무 횟수를 늘리자는 것이다. 이 참에 확 바뀐 미디어 환경과 공론장의 지형도 고려했으면 한다.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 정책을 효과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선거법에 담으려는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