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대 시절 나는 더 나은 삶을 꿈꿨다. 내 엄마는 안 버리고 뭐든 쌓아뒀고, 그 탓에 나는 허리 높이로 쌓인 쓰레기 더미 사이를 쥐들이 뛰어다니는 아파트에서 자랐다. 1년 동안 위탁가정에서 지냈고, 그 밖의 시기에는 갈 곳이 없어 어떤 여름밤에는 낡아빠진 1992년식 코롤라 뒷좌석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곳을 벗어나 위로 올라가는 길을 보았다. SAT에서 최고점을 받고, 좋은 대학에서 알맞은 전공을 고른 뒤, 졸업과 동시에 돈이 되는 직업을 갖는다는 계획이었다. 성공이 보장된 계획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나는 이 계획이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승부를 걸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하버드대에서 컴퓨터과학 학위를 받은 뒤 구글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게 됐다.
나는 이 상승의 궤적을 담은 회고록을 썼고, 책이 나온 뒤 몇 해 동안 전국의 대학에서 강연 초청을 받아 왔다. 처음에는 나 자신을 학생들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롤모델로 여겼다. 그러나 올해 졸업을 앞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는 역사소설의 화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내 관점이 지금도 유효하기는 한 것일까?
2015년 대학을 졸업할 무렵 나와 동기들은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에 푹 젖어 있었다. 조언자들은 우리에게 꿈을 좇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여성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독려했다. 내 기숙사 방 벽에는 2010년대 기업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인물인 셰릴 샌드버그의 말을 담은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두렵지 않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나는 세계 최연소로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가 됐던 엘리자베스 홈스를 만난 일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일은 우리에게 급여뿐 아니라 삶의 목적까지 안겨줬다. 일은 구원이자 자아였고 동시에 초월이었다.
자신을 일과 동일시하는 것은 더 이상 시대의 분위기가 아니다. 나는 의욕에 넘쳐 구글에 들어갔지만 성희롱을 겪으며 환멸을 느낀 끝에 다시는 일을 사랑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회사를 떠났다. 홈스를 비롯해 사기 혐의를 받은 경영자들의 몰락은 이른바 '천재 창업가'라는 존재에 대한 사회 전반의 환멸을 낳았다. 뒤이어 코로나19가 닥쳤다. 우리 삶에서 직장이 차지해야 할 자리가 어느 정도인지를 다시 따져 보게 만든 사건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미국 주(州) 최저임금은 가장 높은 곳도 시간당 18달러(2만6000원)에 못 미치는 반면, 주식시장은 하루 1200명꼴로 새로운 백만장자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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