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우린 누가 지켜주나"…'비밀 국회'에 눈물짓는 보좌진

이재원 기자
2019.02.13 19:04

[the300][여의도 '극한직업']⑤법적 보호 받지 못하는 보좌진들…고용현황 통계조차 비공개

[편집자주] ‘지금까지 이런 직장은 없었다. 이곳은 직장인가 지옥인가. 네 OOO 의원실입니다.’ 영화 ‘극한직업’을 본 한 보좌진의 자조적 목소리다. 풍운의 꿈을 안고 국회 입성했으나 사적 심부름에 동원되기 일쑤다. 정책을 연구하고 정치를 배우는 길은 요원하다. 부모님의 기대를 뒤로 하고 다시 취업 시장으로 돌아가는 보좌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밤에도 환하게 불이 켜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사진=이동훈 기자

#지난해 2월27일 새벽 3시가 넘은 시각.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최대 68시간인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26일부터 이어진 1박2일 마라톤 회의 내내 보좌진들은 의원들의 옆을 지켰다. 법안 합의를 마친 의원들은 밝은 얼굴로 회의장을 빠져나갔지만 보좌진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뿌듯함보다 자괴감이 컸다. 당시 현장을 지킨 비서관은 "법안이 통과돼도 주 52시간 근무는 나와는 무관한 얘기"라고 말했다.

국회 보좌진들이 극한으로 내몰리고 있다. 엄연한 노동자이지만 관리·감독하는 시스템이 전무하다. 각종 노동관련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서류 한 장 제출에 채용·해고가 이뤄지는 '파리목숨'이지만 국회의 비밀주의 탓에 제대로 된 통계조차 구하기 어렵다.

당장 주 52시간 근무부터 언감생심이다. 국회 보좌진은 근로시간 단축의 사각지대에 있다. '별정직' 공무원이다보니 근로기준법이 아닌 공무원법을 적용받는다. 주 52시간을 준수할 근거가 없다.

그래서 대정부 질의 기간이나 국정감사 기간이 되면 휴일 없는 '무한 야근'이 이어진다. 조찬회의 등 의원들의 일정에 따라 출퇴근 시간도 유동적이다. 환노위 소속의 한 의원은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이같은 지적에 대해 "국회는 상황이 좀 특이하지 않느냐"며 웃어 넘겼다. 동석했던 비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의원실 내부에서 생기는 각종 갑질을 감독하는 기관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으니 근로감독 대상도 아니다. 8년차 비서관 A씨는 "지금껏 근무하면서 근로감독은 커녕 설문조사 한 번 해본 적 없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각 의원실은 국회사무처 소속이지만, 사무처는 의원실의 일에 대해선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고용과 관련한 자료 제출조차 꺼리는 상황이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은 고용 현황 확인을 위해 사무처에 자료를 요청했으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취지로 제출을 거부했다. 한 사무처 관계자는 "별도의 자료를 관리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의원실과의 관계도 고려한 결정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의원실의 부당한 노동제도나, 갑질 등은 사무처를 소관 부처로 둔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해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운영위에서 이같은 사안이 실제로 논의 된 적은 없다. 각 정당의 보좌진협의회 선에서 처리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운영위에서 국회 의원실 제도개선을 꺼내들면, 결국 동료 의원을 '저격'하는 꼴이 될 수 있다.

국정감사 시즌만 되면 환노위를 중심으로 각 상임위에서 기업과 공공기관을 불러모아 부당해고와 갑질 등에 삿대질을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서류 한 장에 해고되는 '파리목숨'이라도 막자는 입법 움직임도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해고할 때는 별다른 사유가 없더라도 의원이 일방적으로 면직 요청서를 작성해 사무처에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이에 국회에서는 해고 사실을 미리 통보하는 '보좌관 면직 예고제'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19대 국회에서 김관영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現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이 대표발의했다.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20대 국회 들어선 2016년 10월10일 김영우 당시 새누리당(現 자유한국당) 의원이 같은 내용의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다. 2년이 넘은 지금까지 통과는 감감무소식이다.

2017년 2월 운영위 국회운영제도개선 소위원회에서 한 차례 논의가 있었지만, "국가공무원에는 적용이 안 되는 조항을 국회에만 먼저 넣는다는 것은 문제"라는 일부 의원들의 지적이 있어 진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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