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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명이 숨졌는데 사과는커녕 사건 은폐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글로벌 기업 옥시레킷벤키저 얘기다.
사건이 불거진 때는 2011년 4월,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려 수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지난 1월. 그 사이 옥시는 실험결과를 조작하고 법인의 성격을 바꾸는 등 책임을 회피하는 일에 힘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한 질병관리본부의 연구결과를 반박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실험을 의뢰했는데 비슷한 결과가 나오자 이를 중단시켰다는 의혹을 받는다. 옥시는 자사 입맛에 맞는 실험 결과를 낸 서울대와 호서대의 보고서만 검찰에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옥시는 '맞춤 실험'을 의뢰하며 연구용역비 명목의 뒷돈을 건넨 혐의도 있다.
검찰은 옥시가 자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피해자들의 부작용 호소 글을 무더기로 삭제한 정황 역시 파악했다. 옥시는 2011년 12월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조직을 변경하기도 했다. 형사소송법은 재판에 넘겨진 해당 법인이 존속하지 않을 때 공소를 기각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법인의 형태를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이 따르는 대목이다.
검찰은 이번주부터 제조·유통업체 관계자를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시장을 선도한 업체인 옥시가 첫 타자가 됐다. 전체 사망자 146명 중 103명이 옥시 제품을 쓴 것으로 파악되는 등 피해자 수도 가장 많다.
옥시와 함께 수사선상에 오른 롯데마트는 18일 대국민 사과문과 피해자 보상계획을 발표했다. 사과는 분명 늦었고 책임자 소환조사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이뤄진 일이라 마냥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그런데 그보다 책임이 중한 업체로 지목된 옥시는 아무런 말이 없다.
피해자들이 기자회견과 1인시위를 통해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가해기업의 진정성 있는 사과다. 업체 측이 제품의 인체 유해성을 인지했는지 여부를 떠나서 소비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경위가 어찌됐든 이 사실만으로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검찰 수사와 롯데마트의 사과, 모든 게 늦었다. 더디더라도 방향이 옳다면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친환경 글로벌 기업을 표방하는 옥시 역시 이제라도 진실 규명 작업에 협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