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 곰탕집에 갔어요. 바로 옆 테이블에 아기랑 부부가 와서 곰탕을 먹더라고요. 곰탕에 소면이 나오는데 그 집 남편은 그냥 혼자 곰탕을 먹고, 아내는 건너편 아가한테 계속 국수를 줬어요. 아빤 마치 남남처럼 자기 밥을 먹었고, 그 엄마는 아가 장단만 맞춰주길래 '좀 이상한 엄마네' 싶었어요. 그 집이 다 먹고 일어났는데 테이블이랑 바닥이 소면으로 난리가 났어요. 테이블 건너편 엄마가 국수를 주니 제대로 먹지 못해 떨어졌고, 애가 아기 의자에 앉아서 소리지르고 난리였는데 남편은 아기 신경을 쓰진 않고… 괜히 '맘충'이란 단어가 나온 건 아닌 것 같아요." (지난해 7월, 회원수 270만명의 국내 최대 육아 카페에 올라와 화제된 글.)
처음엔 '일부 개념없는 엄마'를 지칭한다며 등장한 혐오단어 '맘충'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점차 몰상식한 엄마로 치부되는 행동의 범위가 넓어지고 엄격한 잣대를 가해지고 있는 것인데, 처음엔 공공장소 예절을 지키지 않고 자기 애만 신경쓰는 엄마를 맘충이라 부르다가 그 다음엔 공공장소에서 애가 울거나 소리를 한번 지르면 맘충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제 맘충은 카페에 유모차를 끌고 오거나 비행기, 영화관 등에 아이를 동반한 엄마들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하지만 맘충 혐오 속, 아빠는 온 데 간 데 없다. 그리고 맘충 혐오가 그 정도를 더해갈 수록 굳이 아기를 낳아 키우며 혐오를 받고 싶지 않은 이들도 늘어가고 있다.
◇'맘충'과 '허수애비'
신조 혐오단어 '맘충' 사용이 늘면서 '파파충'이나 '아빠충' 등의 단어는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즉 아빠는 육아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공공 장소에서 애를 다룰' 일도 없고, 자연히 '파파충'은 등장하지 않게 된다는 것. 사실 가정 내에서 더 비판받아야할 대상은 육아를 남일 보듯 한 아빠지만, 결국 온 사회의 비판은 홀로 육아를 해 '독박 육아 스트레스'를 받는 엄마가 모두 짊어지는 데 대한 반발심이었다.
결국 반대 급부로 똑같이 혐오 단어를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가정에서 '허수'의 존재이거나 '투명'하기까지한 존재인 아빠를 가리키는 말을 만들자는 운동이 그것이다. '허수애비'나 '투명애비' 같은 단어가 만들어졌다. 이 단어들은 가부장적 권위를 갖지만 정작 집안일과 육아에는 무관심·비참여적이어서 마치 허수의 존재이거나 투명하기까지한 존재인 아빠를 가리킨다.
앞서 소개된 육아 카페 게시물에 달린 댓글에서 다른 누리꾼들은 엄마가 국수를 먹이며 '맘충'으로 거듭나는 동안 아빠는 무얼 하고 있었냐고 지적했다. "아이는 부부가 같이 낳았고 남편도 방관하고만 있었는데 왜 엄마한테만 '맘충'이라고 하시죠"라는 댓글이 그것이다. 하지만 혐오 대상으로 인식되는 건 아빠가 아닌 엄마다. 아빠는 직접적인 욕을 불러일으키는 '육아'에 아예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애 아빠는 아가한테 국수를 안줬어요. 둘 다 똑같이 잘못했다고 쳐도 엄마분이 이해가 안갔어요. 맘충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죠"라는 댓글을 남겼다.
이처럼 한국의 가사·육아 현장에서 '아빠'의 자리는 지워져있다. 2014년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의 가사노동 시간은 여성 3시간13분, 남성 41분이었다. 지난 7월 서울시가 발표한 조사 결과도 유사하다. 서울시가 지난해 9월 서울시내 2만 가구(15세 이상 4만2687명)와 서울 거주 외국인 2500명을 대상으로 방문면접 조사한 결과 남편과 부인이 똑같이 가사를 한다는 응답자는 전체 13.8%에 불과해 가사노동의 불균형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육아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6월 잡코리아가 맞벌이 남녀 직장인 507명(남성 223명·여성 284명)을 대상으로 '맞벌이 직장인의 가사와 육아부담' 설문조사를 시행했는데, '독박육아를 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전체 여성 응답자 중 34.5%가 '그렇다'고 답했다. 여성 응답자들에게 ‘남편의 가사와 육아 참여율은 100% 중 어느 정도인가?'질문하자 여성 응답자들은 가사 참여율이 평균 33.0%라고 했으며 육아 참여율은 33.2%라고 답했다. 남성 응답자들은 가사 참여율이 평균 45.3%, 육아 참여율은 평균 44.2% 정도라고 말했다. 여성 응답자가 체감하는 정도 보다는 다소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남성 응답자 스스로도 가사와 육아에 많은 도움은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 같은 독박육아에 아이 엄마들의 육아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2016년 2월 경기연구원은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슈퍼맘'을 요구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엄마들의 육아스트레스가 증가하는 추세라면서, '엄마가 만능이길 바라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60.2%)와 '아이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46.4%)에 '그렇다'고 응답한 이들이 많다고 밝혔다.
두 살 배기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 정모씨도 "가끔씩 스트레스에 다 놓고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아기가 우려고 하는 소리만 들어도 짜증이 올라온다"고 말했다.
◇'허수애비'와 '라떼파파'
한국에서 '맘충'이란 신종 혐오단어가 생기고, 이에 대한 반발로 '허수애비'란 말이 생기는 동안 북유럽 발 신조어 '라떼파파'가 한국에도 전해졌다. 라떼파파는 커피를 손에 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를 의미하는데, 남녀 공동 육아 문화가 자리잡은 스웨덴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스웨덴은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90%에 달하고 오후 4시면 퇴근해 부모가 함께 아이들을 돌본다. 자연히 스웨덴에서는 부모 중 어느 한쪽이 독박육아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 남성의 육아시간은 하루 55분으로 미국(76분)과 함께 선두다. 반면 이 조사에서 한국 남성의 육아시간은 하루 6분에 불과했다.
이렇게 긍정적인 스웨덴 역시 처음부터 공동 육아가 나타나는 국가는 아니었다.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스웨덴에서는 아빠들은 밖에서 일하며 육아와 집안일에 거의 신경 쓰지 않았고, 임신한 여성들을 해고하는 것이 합법이었다. 하지만 스웨덴 정부가 제도 마련에 나서며 바뀌었다. 스웨덴은 부모 각각에게 90일의 필수 육아휴직을 주고, 부모가 나눠서 사용할 수 있는 480일의 출산휴가를 준다. 특히 부부가 육아휴직기간을 똑같이 나눠 사용하면 추가 세금감면혜택을 준다. 육아휴직기간 중 390일은 직전 급여의 80%가 지급되고, 나머지 90일은 이보다 낮은 고정 비율로 급여를 보전해준다. 아빠가 육아휴직을 신청할 경우 별도의 장려금도 나온다. 아빠 육아휴직을 적극 권장하는 사회시스템 덕분에 스웨덴 아빠들의 대부분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게 됐다.
이를 통해 스웨덴의 출산율은 2000년 1.54로 바닥을 찍은 뒤 꾸준히 올라 이젠 유럽 국가중 가장 높은 출산율 1.88명(2014년 기준)을 자랑한다. 여성경제활동 참가율도 73.1%로 남성의 76.5%에 뒤지지 않는다.
이는 '맘충'과 '허수애비'의 국가 한국이 겪고 있는 문제들(즉 여성들은 독박 육아와 경력단절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 아이를 낳지 않고, 또 남성들은 아내의 경력 단절로 홀로 외벌이에 나서고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육아는 외면하게 되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김진욱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7월 '제2회 서울인구심포지엄'에서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로 가정 내 아버지의 역할 부재를 꼽으면서 "통계청 사회조사 실태를 보면 양성평등 인식이 강할수록 가사노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대로 소위 '꼰대'스러운 아버지상을 한 남성들이 있으면 아이도 낳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남성들이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출산휴가를 쓰며 아이가 어릴 때부터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합계출산율(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2006년 1.123명에서 지난해 역대 최저치인 1.05명으로 떨어지자 우리 정부도 저출산 대책으로 이 같은 방안을 고심중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등은 "앞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구체적으로는 일과 생활의 균형, 양성평등 여성 일자리 안정 등을 저출산 극복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5년차 육아아빠 노승후씨는 "정부가 아빠의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문화에 대해 좋게 보고 있다"면서 "육아휴직하는 아빠가 2011년 1400명에서 지난해 1만2000명까지 늘어났다. 좋은 흐름이지만 남자든 여자든 육아휴직 후 경력단절 되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