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 영상 유포당하고 싶지 않으면 빨리 입금하세요."
지난달 27일 경남 마산동부경찰서는 영상 통화로 음란 행위를 유도한 뒤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일명 '피싱' 범죄 조직 일당 8명을 전원 검거했다. 중국에 사무실까지 차려두고 조직적으로 움직인 이들에게 75명의 피해자가 7억여원의 금액을 편취당했다. 이들은 각종 피싱 수법을 동원해 10~50대의 피해자들을 무차별적으로 낚았다.
전원 검거의 맨 앞에는 박종민 마산동부서 사이버수사팀장(46)이 섰다. 박 팀장은 휴가까지 반납해 가며 팀원들과 밤낮으로 이 사건에 매달렸다. 피해자들은 수치심에 가족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박 팀장은 '죽고 싶다'는 말까지 할 정도로 시달리던 피해자들 생각에 차마 손을 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박 팀장은 특채로 경찰에 임관된 이후 16년간 줄곧 사이버 수사를 맡아 온 '베테랑'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름을 알리는 것보다도 수사가 우선순위다. "얼굴이 알려지면 수사에 지장이 생길까 두렵다"며 사진 촬영도 거부한 박 팀장을 머니투데이가 마산에서 만났다.
코로나19로 비대면 범죄가 늘면서 모든 범죄가 사이버 범죄가 됐다. 마약·성매매에서 사기까지 유형도 다양하다. 학교폭력이나 협박 등의 범죄가 사이버 공간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최근 들어서는 지인이나 가족을 사칭하는 피싱 범죄가 크게 늘었다. 수법이 진화하면서 성을 매개로 하는 범죄도 다수다.
특히 메신저·SNS를 통한 피싱 범죄는 누구든 표적이 된다. 나이가 어린 학생들이나 외로움을 느끼는 50대일수록 피해자가 되기 쉽다. 이번에 검거된 사기 조직은 인터넷에 떠도는 여성 영상을 편집해 실시간으로 채팅을 하는 것처럼 꾸며 "외롭지 않느냐"며 감정을 자극했다. 범죄에 걸린 시간은 10여분. 이 시간 동안 남성 피해자들은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돈을 갈취당했다.
여성 피해자를 상대로는 '로맨스 스캠'이라는 피싱 수법을 동원했다. '로맨스 스캠'은 피해자의 호감을 산 뒤 금전을 요구하는 신종 피싱 수법이다. 자신을 유력 사업가나 유명 병원장의 아들로 소개한 가해자들은 '외국에 있으니 수수료를 대신 입금해 달라'고 속였다. 피해자가 만남을 요구하면 '코로나19로 자가격리 중이어서 힘들다'고 둘러댔다.
이들은 중국인 국적의 총괄 지휘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조직 내에 호감형의 남성도, 미모의 여성도 없었지만 70명의 피해자가 돈을 갈취당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인출책이 은행에서 하루에 1억원까지 인출할 때도 있었다. 현재까지 드러난 피해액은 7억원이지만, 박 팀장은 드러나지 않은 피해금액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를 이어 가고 있다.
조직은 피해자 중 한 명이 진정서를 접수하며 덜미를 잡혔다. 단순한 피싱 사건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박 팀장은 이 사건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박 팀장은 조직 하부의 인출책부터 총책까지 전원 검거를 위해 끈질기게 매달렸다. 그 결과 중국인 국내총괄 등 8명이 모두 걸려들었다. 조직에는 사기 전과로 수배 중인 범죄자도 있었다.
박 팀장은 "사회 경험이 없거나 가정에서 소외당한 피해자들은 단순하게 '내게 호감이 있다'고만 생각해 경계심을 푸는 경우가 많다"며 "범죄자들은 피해자의 심리를 이용해 금품을 갈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금품 요구가 수차례 계속되다 보니 심적 부담감에 시달리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박 팀장이 지휘하는 사이버수사팀의 수사관 6명은 1인당 100건 이상의 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그마저도 매일 접수되는 민원은 제외한 숫자다. 1살짜리 아이를 둔 아빠에서부터 이제 갓 경찰에 임관된 젊은 여성까지 구성원도 다양하다. 이번 사건같이 대형 사건이 발생하면 적어도 1달 이상 팀 전체가 매달려야 한다.
사이버 범죄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범죄자를 특정하는 일이다. 이용자의 대부분이 익명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기 때문에 범죄 사실이 성립되더라도 범죄자를 찾아내기가 어렵다. 범죄 수법도 나날이 복잡해지고 정교해져 수사관들 사이에서는 '하루 자고 나면 새 수법이 등장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다.
때문에 박 팀장을 비롯한 사이버 수사관들은 커뮤니티에서부터 뉴스 기사 등 인터넷에 민감하다. 불법 촬영 음란물 등의 범죄가 발생하면 사무실 내에서 팀원들 전체가 음란물을 시청하며 범죄 사실을 가려낼 때도 있다. 나이가 많거나 여성이라고 해 예외는 아니다.
박 팀장은 "사이버 범죄의 경우 범죄자를 잡지 못하면 절대로 피해를 회복할 수가 없다"며 "수치심을 자극하는 사이버 범죄의 피해자들은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수사관이 포기하면 누구도 그들을 돕지 못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