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낯으로 가족을 봅니까 제가. 진짜 죽고 싶습니다."
지난 2월 밤 늦은 시간 술에 취해 전남훈 경기남부청 사이버범죄수사대 팀장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몸캠피싱' 피해자 A씨였다. 그는 페이스북 메시지로 말을 걸어 온 여성 프로필의 신원 미상자와 영상통화를 했다. 이후 "돈을 보내지 않으면 얼굴과 몸이 드러난 음란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 전화와 문자를 받았다. 피해자가 돈을 보냈지만 요구는 계속됐고, '몸캠' 영상은 피해자의 며느리를 포함한 지인들에게 뿌려졌다.
전 팀장은 이미 1년 가까이 '몸캠피싱' 조직을 쫓고 있었다. 랜덤채팅이나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여성으로 위장한 사기 조직원들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이 첫번째 단계다. 이들은 친밀감을 높인 뒤 서로 영상통화를 하자고 요구한다. 피해자가 영상통화에 응하면 이모습을 촬영한다.
이 때 조직원들은 피해자에게 파일을 하나 보내는데, 이걸 무심코 누르면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있는 연락처가 모두 사기조직에게 넘어간다. 사기 조직들은 피해자의 영상을 확보한 지인들의 연락처로 보내겠다며 협박하고, 돈을 뜯어낸다. 돈을 보내도 영상이 지인들에게 뿌려지는 경우가 많다.
A씨에게 사기를 친 '몸캠피싱' 조직은 지난해 2월부터 1년여에 걸쳐 피해자 511명에게 22억원을 뜯어냈다. 피해자는 몸캠피싱으로 퇴직금 수억원을 날렸다.
전 팀장은 14년간 형사팀에서 근무하다 사이버범죄수사대로 옮겨 5년간 근무했다. 그는 이 조직을 잡기 위해 1년여를 쫓았다. 피해금 수거책과 인출책보다는 위에 '관리자급'을 노렸다. 그래야 범죄를 뿌리뽑을 수 있어서다.
추적은 쉽지 않았다. 중국 총책 B는 국내 조직원들에게 메신저 '위챗'으로 범행을 지시했다. 이들은 불특정 피해자들에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채팅으로 접근할 수 있는 SNS를 통해 접근했다. B는 조직원이 전체 조직을 알 수 없게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운영했다.
전 팀장과 팀원들은 1년여의 수사 끝에 국내 총책의 지시를 받는 관리자급 중국 동포 C를 특정했다. 대포통장 20여개를 이용해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돈을 인출하는 역할이었다. C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돈을 인출하는 장소와 시간대를 불규칙하게 했다.
전 팀장과 팀원들은 서울 신도림과 구로 일대에서 10여일을 잠복한 끝에 올 2월 다른 조직원에게 현금을 전달받는 C씨를 현장에서 잡았다. 도주하려는 C씨를 잡는 과정에서 팀원이 바닥에서 뒤엉켜 옷이 찢기고, 경찰인줄 몰랐던 시민이 전 팀장의 팀원을 112에 신고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검거한 C씨를 중심으로 조직의 형택를 파악했고, 전 팀장은 캠피싱을 계획·주도한 중국인 총책B와 인출책 등 45명을 검거했다. 이중 21명은 구속됐고, 해외로 도피한 24명은 수배 중이다.
전 팀장은 "피해자는 거의 남성이고 나이대는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며 "돈을 많이 뜯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싶으면 억대까지도 요구하며 괴롭히기도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망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신고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다 거액을 뜯긴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하면, 이를 통해 또 다른 피해자들을 찾는다. 경찰 전화에 "창피해서 진술 못한다. 돈도 못 돌려받는 것 아니냐"며 거부하는 일이 다반사다.
전 팀장은 "몸캠피싱 관련된 기사에 '상대방이 보내준 파일을 누르지 않으면 되지 않냐, 당하는 사람이 바보다'는 댓글이 있었는데 알고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한 피해자는 몸캠피싱 수법을 뉴스를 통해 봐 인지하고 있었으나, 걸려온 영상통화를 무심코 받았다가 1~2초 사이 찍힌 얼굴이 음란물에 합성돼 유포 협박을 받았다.
전 팀장은 "호기심을 억누르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 영상통화를 제안하면 거절하는 게 최선"이라며 "몸캠피싱을 당하면 홀로 대응하지 말고 경찰에 신고하고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피함에 신고하는 대신 돈을 주는 등 대응하면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 팀장은 몸캠피싱을 당했을 땐 휴대전화와 번호를 전부 바꾸고 모든 SNS 계정을 탈퇴하라고 권고했다. 그는 "피해자들이 쉽게 신고하지 못 한다는 걸 범죄자들도 안다"며 "이게 그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경찰 신고로 조치하는 게 최소한의 방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