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면 가야죠."
오늘도 증권사 애널리스트 A씨는 '공짜 노동'을 하러 간다. 이른바 '세미나'를 하러 가는 것. 세미나는 애널리스트가 작성한 보고서를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등에게 직접 설명하는 자리다.
한때 증권사 신입직원들의 선망을 한몸에 받았지만 요새 애널리스트들은 자신을 '을 중에서도 을'이라고 부른다. '갑'은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나 연기금 운용 관계자다.
매니저들이 윗선에 보고하는 회의자료를 애널리스트들에게 미루는 것은 일상. 심지어 자산운용사 고위직 인사의 야간 대학원 과제나 대학생 자녀 리포트를 대신 써주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업계에선 "숙제를 한다"고 한다. 이는 '리퀘스트 항목'으로 애널리스트들의 실적 평가에도 들어간다.
이러한 갑을 관계는 이른바 '폴(poll·여론조사) 영업' 때문이 크지만 국내 증권사의 보고서를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사용할 수 있는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자산운용사들은 거래 수수료를 지급하는 대가로 리서치 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해왔다.
이 틀을 깨는 시도가 최근 유럽에서 한창이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유럽연합(EU)의 '금융상품투자지침2(Mifid II)' 때문이다. 이 규제는 거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자산운용사가 IB(투자은행)와 중개사에 거래 수수료와 별도로 리서치 이용료를 지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모간스탠리의 경우 자사 스타 애널리스트와 일대일로 1시간 만나는데 2500달러(약 280만원) 책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면담료는 모간스탠리의 기본 리서치 자료(애널리스트와 미팅 5시간 포함)에 대한 연간 이용료 2만5000달러(약 2800만원)와는 별도다.
그러나 국내 증권사에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상황.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리서치도 지적재산권인 만큼 돈을 받는 게 맞지만 주문을 내는 자산운용사 측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상황에서 리서치 서비스를 유료화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변화는 금융당국이 시작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을이 갑의 비용부담을 늘릴 수 없고 갑이 비용을 자발적으로 부담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목표주가 괴리율을 도입하라고 하니 한 번에 되지 않았나. 리서치 유료화 역시 업계에서는 수십 년째 해보려고 해도 안된다. 금감원에서 강제하는 방법밖에 없다." 정보를 돈 주고 사지 않는 문화,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