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e스포츠를 발명했고, 관람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6월 5일 서울 마포구 T1 베이스캠프에서 이상혁(페이커) 선수에게 사인한 RTX 5090을 건네며 한 말이다.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업 수장이 치켜세운 'e스포츠 종주국' 한국은 2000년대 초반 스타크래프트1을 앞세워 세계에서 가장 먼저 e스포츠를 직업과 산업으로 만들었다. 프로팀, 방송리그, 전용 경기장, 팬덤, 선수 연봉 체계가 스타1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러나 원조 격인 스타1은 지금 공식 프로리그 없이 개인방송과 팬 후원에 기대 명맥을 잇고 있다.
2004년 7월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한빛스타즈와 SK텔레콤 T1의 스타1 프로리그 결승전에 약 10만명이 몰려 함성을 질렀다. 같은 날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 관중 1만5000명의 여섯 배가 넘었다. 스타1 프로리그는 2003년 출범해 2016년까지 이어졌고, 전성기인 2008년에는 참가팀이 12개까지 늘었다.
당시 프로게이머 지망생은 한국e스포츠협회(KeSPA)가 여는 커리지매치에서 입상해 준프로 자격을 얻고, 프로팀 드래프트에 지명돼야 했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은 2005년 기본연봉 1억8000만원에 옵션을 더해 3년 최대 7억8000만원 계약을 맺었다. T1 소속 도재욱도 최고연봉 9000만원을 받았다. 옵션과 승리수당을 더하면 1억4000만원까지 가능했다.
지금은 다르다. 프로팀은 사라졌고 공식 프로리그도 없다. 선수들은 스트리밍 플랫폼 SOOP 개인방송으로 팬들과 만난다. 위메이드 폭스와 KT에서 활동했던 박성균은 "스타1 스트리머가 300명쯤 되지만 실제 꾸준히 활동하는 건 40~50명 수준"이라고 말했다.
생계 구조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구단 연봉과 승리수당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별풍선, 팬 후원, 개인 대회 상금이 핵심이다. 팬이 후원금을 걸고 경기를 붙이는 '스폰빵' 문화도 자리 잡았다. 도재욱은 "은퇴하고 지금까지 먹고사는 것은 팬들 덕분"이라며 "리그가 없으면 끝날 수 있었는데 대회를 열어줘서 목표가 생긴다"고 말했다.
팬덤의 얼굴도 변했다. 도재욱은 "그때는 여고생 팬들이 선물과 쪽지를 주고 갔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당시 팬들이 직장인이 됐다. 박성균은 "취업해서 스트레스를 스타로 푸는 팬들이 많다"고 말했다. 20년 전 경기장을 찾던 팬들이 경제활동을 하면서 후원과 시청으로 옛 선수들을 지탱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 구조가 산업 생태계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팬이 있는 선수는 살아남지만, 신인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공식 등용문은 약해졌다. 아마추어가 프로로 올라가던 체계도 사라졌다. 프로팀이 없으니 연습생을 뽑고 키우는 구조도 작동하기 어렵다.
사우디아라비아가 e스포츠월드컵(EWC)의 상금 규모를 2024년 6250만달러에서 올해 7500만달러로 키운 것과 대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e스포츠를 가장 먼저 산업화했지만 지금은 종목별 생태계 육성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