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e스포츠의 현주소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6월 방한 기간 세 차례나 PC방을 찾아 "한국이 e스포츠를 만들었고, e스포츠가 PC방과 지포스(GeForce)를 키웠다"고 말했다. 젠슨 황이 결코 잊지 못한다는 국내 e스포츠 문화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6월 방한 기간 세 차례나 PC방을 찾아 "한국이 e스포츠를 만들었고, e스포츠가 PC방과 지포스(GeForce)를 키웠다"고 말했다. 젠슨 황이 결코 잊지 못한다는 국내 e스포츠 문화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총 6 건
"한국은 e스포츠를 발명했고, 관람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6월 5일 서울 마포구 T1 베이스캠프에서 이상혁(페이커) 선수에게 사인한 RTX 5090을 건네며 한 말이다.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업 수장이 치켜세운 'e스포츠 종주국' 한국은 2000년대 초반 스타크래프트1을 앞세워 세계에서 가장 먼저 e스포츠를 직업과 산업으로 만들었다. 프로팀, 방송리그, 전용 경기장, 팬덤, 선수 연봉 체계가 스타1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러나 원조 격인 스타1은 지금 공식 프로리그 없이 개인방송과 팬 후원에 기대 명맥을 잇고 있다. 2004년 7월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한빛스타즈와 SK텔레콤 T1의 스타1 프로리그 결승전에 약 10만명이 몰려 함성을 질렀다. 같은 날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 관중 1만5000명의 여섯 배가 넘었다. 스타1 프로리그는 2003년 출범해 2016년까지 이어졌고, 전성기인 2008년에는 참가팀이 12개까지 늘었다. 당시 프로게이머 지망생은 한국e스포츠협회(KeSPA)가 여는 커리지매치에서 입상해 준프로 자격을 얻고, 프로팀 드래프트에 지명돼야 했다.
"안녕하세요. 전(前) SK텔레콤 T1 소속 프로토스 유저였고 별명은 괴룡, 괴수였던 도재욱이라고 합니다. " "현재 SOOP에서 게임 방송을 하고 있고, 전에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였습니다. 선비, 독사로 불렸던 박성균입니다. " 승부조작과 후원사 이탈이 겹치며 스타크래프트1 리그가 저물던 무렵 함께 e스포츠 업계를 떠난 두 전직 프로게이머를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뛰어난 실력으로 당시 아이돌급 인기를 누린 두 사람은 지금 인터넷 개인방송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며 게임을 이어간다. 두 사람은 스타1 전성기를 대표하던 스타, '레전드'였다. 도재욱은 끊임없이 쏟아내는 물량 공세로 '괴수'라 불리며, 당대 최강 프로토스 여섯 명을 일컫는 '육룡'의 한 명으로 꼽혔다. 2008년 EVER 스타리그 결승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했다. 박성균은 2007년 다음(Daum) 스타리그에서 당시 프로토스 최강자로 군림하던 김택용을 3-1로 꺾고 우승하며 '독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들이 활약하던 스타1 리그는 2012년 스타크래프트2로 전환된 뒤 후원사 난항과 팀 해체 속에 2016년 막을 내렸다.
e스포츠의 위상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데 이어, 올해 9월 개막하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도 정식 종목으로 유지된다. 여기에 청소년 스포츠 축제인 전국소년체육대회에도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게임'에 씌워졌던 부정적 낙인이 걷히고 제도권 스포츠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발표한 '2025 e스포츠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업 규모도 꾸준히 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국내 e스포츠 게임단은 43개다. 이 가운데 모기업 후원을 받는 게임단이 20개다. 전체 팀은 107개로, 종목별로는 배틀그라운드가 16개 팀으로 가장 많고 이터널 리턴 14개, 리그오브레전드(LoL)와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 각 10개 팀으로 뒤를 이었다. 프로선수는 398명으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 78명으로 가장 많고 △배틀그라운드 72명 △이터널 리턴 55명 △LoL 53명 △FC 온라인 36명 순이었다. 2·3군 등 아마추어 선수는 167명으로 집계됐다.
2016년 스타크래프트1 프로리그가 공식 폐지됐을 때 업계에선 "이 종목은 끝났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스타1은 사라지지 않았다. 무대가 방송사에서 개인방송 플랫폼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인터넷 방송 플랫폼 SOOP이 운영하는 'ASL(아프리카TV 스타리그)'은 올해로 10년째, 시즌22를 준비 중이다. SOOP에 따르면 ASL은 지난해 10월 기준 누적 시청자 2억명을 기록했다. 우승 상금은 3000만원 수준이다. SOOP 관계자는 "무대를 잃은 선수와 해설진이 스트리머로서 새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를 제공해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익성 낮은 리그를 10년째 유지하는 이유가 선의만은 아니다. 리그를 발판으로 이용자가 유입되면 플랫폼 내 콘텐츠 생태계가 구축되면서 별풍선·구독 같은 파생 매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SOOP이 지난해 리그오브레전드 MSI를 중계하며 시청 미션과 경품 이벤트로 이용자를 플랫폼에 붙잡아둔 것도 같은 설계다. 실제 SOOP 매출의 70% 이상이 별풍선·구독에서 나온다.
사우디아라비아 e스포츠 재단(EF)이 주관하는 'e스포츠 월드컵 2026(EWC 2026)'이 올해 이란 전쟁 여파로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베르사유에서 지난 8일(현지 시간) 개막했다. EWC가 사우디 리야드 외 지역에서 열리는 첫 사례로 100개국 이상에서 2000명 이상의 선수, 200개 이상의 e스포츠 구단이 참가했다. 국내 e스포츠 대회 규모가 과거보다 작아진 것과 반대로 글로벌에서는 계속 확대되는 모습이다. 2024년 시작한 EWC는 세계 최대 규모다. 지난해 EWC는 전 세계 140개국 7억5000만명이 총 3억5000만시간을 시청했다. 97개 파트너사를 통해 28개 플랫폼에서 35개 언어로 중계됐다. 올해 EWC는 24개 종목, 총 25개 토너먼트가 진행되며 총상금 규모는 7500만달러(약 1030억원)다. 재단은 올해 크리에이터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팬들은 자신이 신뢰하는 크리에이터를 통해 원하는 시간과 방식으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싶어해서다. 재단은 크리에이터를 지난해 3500명에서 올해 5000명으로 확대 모집하는 한편 크리에이터의 성장 지원을 위한 총 200만달러(약 31억원) 규모의 보상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국내 게임사들이 e스포츠 살리기에 직접 나섰다. 리그를 만들고 상금을 키운다. 게임을 오래 끌고 가기 위해 게임사가 스스로 판을 꾸리는 것이다. 한때 e스포츠는 일부 인기 종목과 프로 구단 중심으로 성장했다.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게임사들이 자사 지식재산권(IP)을 기반으로 자체 리그를 만들고, 선수 육성부터 팬덤 관리까지 직접 맡는다. e스포츠가 라이브 서비스 게임의 생명력을 늘리는 장치로 떠오른 것이다. 넥슨은 축구 게임 'FC 온라인'으로 최상위 리그인 'FC 온라인 슈퍼 챔피언스 리그(FSL)'를 운영중이다. 올해 스프링 시즌은 3월31일부터 6월14일까지 약 3개월간 총 56경기로 진행됐다. T1 등 총 8개 구단이 참여했다. 시즌별 우승 상금은 10억원이다. 넥슨은 FSL을 최상위 프로 리그로 두고, 2부 리그인 'FC 온라인 퓨처스 리그(FFL)', 세미프로·아마추어 오픈리그까지 만들었다. 구단과 선수 간 표준계약서 작성, 샐러리캡 도입 등도 포함했다. 게임사가 직접 리그 운영 질서와 생태계까지 설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