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 연 캐리람…긴급법 발동에 '넥타이부대' 나섰다

유희석 기자
2019.10.04 17:07

시위대 마스크 등 착용 금지…5일 0시부터 시행<br>위반 시 최대 징역 1년…시민 반발 오히려 커져

4일 복면금지법 시행을 알리는 기자회견에 나선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사진=AFP통신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4일 기자회견에서 "지난 4개월 동안 약 400회의 시위가 열렸고, 이 때문에 경찰관 약 300명을 포함해 11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면서 "'복면금지법'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집회나 시위 참가자가 신원을 감추기 위해 마스크나 방독면 등을 착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5일 0시 이후 홍콩에서 시위나 집회 참가자가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면 최고 징역 1년이나 2만5000홍콩달러(약 381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물감 등으로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도 제한된다.

또 꼭 시위나 집회 현장이 아니더라도 홍콩 경찰이 누구에게나 마스크를 벗으라고 요구할 수 있으며, 이를 거부하면 6개월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의료나 종교적인 목적으로 마스크를 쓰는 것은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으나, 이때도 경찰이 요구하면 벗어야 한다.

람 장관은 이날 "지난달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원인인) '범죄인 인도 협약(송환법)'을 철회하고 대중과의 대화를 약속했지만, 불행히도 지난달 29일과 이달 1일 폭력 수위가 높아졌다"면서 "정부는 폭력을 허용할 수 없으며 이를 막기 위한 가능한 법안들을 검토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위는 더욱 빈번해지고 있고, '폭도'가 조직적으로 변하면서 시민과 기업의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라며 "홍콩의 질서가 회복될 수 있는지 의문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은 경찰을 돕는 것"이라고 복면금지법 시행 배경을 설명했다.

복면금지법의 근거는 계엄령이나 마찬가지인 '긴급정황규례조례(긴급법)'다. 긴급법은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 홍콩 행정 수반인 행정장관에게 체포, 구금, 추방, 재산 압류, 교통 통제 등의 권한을 주는 것으로 영국 식민지 시절이던 1922년 제정됐다. 국회 격인 입법회 승인 없이도 행정부가 막강한 권한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1967년 이후에는 발동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된 법이었다.

람 장관은 홍콩 정부가 복면금지법 시행으로 반정부 시위를 더 격하게 만들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번 복면금지법 시행이 어렵지만 필요한 결정이었음을 강조하면서 "폭력 시위를 방지하는 효과를 내기를 기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홍콩이 국가비상사태인 것은 아니다"고 했다.

4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반정부 시위에 나선 홍콩 직장인들. /사진=AFP통신

그러나 긴급법 발동에 대해 시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날 도심인 센트럴 지역에서는 정부의 복면금지법 시행에 반대하는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대거 거리로 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학생은 물론 반정부 시위 참여에 비교적 소극적이었던 '넥타이 부대'까지 시위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점심시간이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지만, 일부가 거리를 막고 시위를 벌이면서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

SCMP는 "마스크 금지 등의 법안을 강제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면서 "법률 전문가들은 긴급법이 정당한 절차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 더 가혹한 규정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고 전했다.

람 장관은 이날 홍콩 행정부나 마찬가지인 행정회의 소속 16개 사장(司長·국장)과 함께 기자회견에 나섰다. 2017년 7월 행정장관이 된 람 장관이 행정회의 소속 모든 사장이 함께 기자회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홍콩 입법회는 16일 새로운 회기를 시작하기로 했으며 이날 행정부 주요 인사가 반정부 시위의 단초가 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의 공식 철회를 선언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달 4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대국민 연설을 통해 송환법 철회를 발표한 데 따른 조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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