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에 애플 주식을 샀다면 지금쯤 얼마나 올랐을까? 환율이나 배당을 감안하지 않은 단순 주가 수익률은 63%다.
미국 증시 불패 신화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미국 주요 지수들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완화를 훈풍으로 사상 최고치까지 올랐다. 미국 경제가 호전될 기미를 보이면서 눌려왔던 유럽, 아시아 증시도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 딛고 V자 반등 하며 최고치
6일(현지시간) 기준 미국 나스닥지수는 연초 대비 26.7%가 급등했다. 다우지수는 17.8%, S&P500지수는 18%가 상승했다. 세 지수 모두 최근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미국과 중국이 언제 1차 무역 협상에 공식적으로 서명을 할 지 기다리며 보합권에 머물고 있다.
미국 증시가 호전되면서 글로벌 증시도 함께 웃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올해 부침이 계속됐지만 연초 대비 19.4%(7일 종가 기준)가 뛰었다. 범유럽 주가지수인 스톡스유럽600은 19.8%가 올라 4년여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니케이지수는 16.6% 올라 연중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 대만 자취엔 지수는 반도체 기업이 증시 상승을 이끌면서 올해 19.3%가 급등했다.
사실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의 기쁨을 누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9월에도 경제 회복 기대감에 사상최고치를 경신했으나 미국과 중국 간 무역갈등이 불거지면서 12월에 급락, 오히려 '최악의 해'로 끝났다. 지난해 12월 한달간 다우지수는 8.7%, S&P(스탠다드앤드푸어스)500지수는 9.2% 하락해 1931년 이후 최악의 12월 하락률을 기록했다. 나스닥지수도 9.5% 미끄러져 2002년 이후 가장 가파르게 떨어졌다.
올해의 높은 주식 수익률은 지난해 하락에 따른 되돌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 최고치'라는 역대 기록에도 월가가 크게 기뻐하지 않는 이유다. 미·중 무역 갈등이 다시 불거지면 증시가 재차 고꾸라질까 두려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시 하락 압력은 지난해보다 높지 않다'고 평가받는다. 올해 미국 증시는 정치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V자 반등을 반복하며 조금씩 하방을 높여왔다.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칼라일그룹 공동창업자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1단계 무역합의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내년 및 향후 몇 년간 무역전쟁이 경제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최근 수년간 언제나 증시 고점을 얘기했지만 틀렸다. 왜냐면 증시가 계속 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 관세를 철회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도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7일 가오펑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지난 2주간 중미 양측 협상 대표가 진지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진행했으며 합의가 진전됨에 따라 단계적인 관세 철폐에 동의했다"고 발표했다.
◇R의 공포는 수그러들었다…금리 인하에 유동성도 풍부
무엇보다 지난해 증시를 흔들었던 R(리세션)의 공포는 수그러들었다는 분위기다. 지난 3분기 미국 GDP 성장률은 1.9%로 연준의 목표치 2%를 밑돌았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소비 지출은 3분기 2.9% 증가해 소비가 탄탄하게 이어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미국 기업실적도 안정적이다. 지난달 말까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S&P500지수에 포함된 기업 중 75%가 전문가 예상치를 웃도는 성적표를 내놨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경제활동의 약 70%를 차지하는 민간 소비가 상당히 탄탄하고 소득이 올라가고 있다"며 "기업 심리는 침체됐지만 그렇다고 리세션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각국의 중앙은행이 계속 돈을 풀고 있는 점도 증시 하방을 받쳐주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하반기 들어 3차례나 금리를 인하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은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하고 있다. 지난 5일 중국 인민은행도 2016년 이후 처음으로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대출금리를 인하했다.
캐너코드 제뉴이티의 토니 드와이어 수석 시장 전략가는 "인플레이션이 미미한 상황에서 중앙은행은 어떻게든 돈을 더 쓰게 만들고 있다"며 "증시가 급락할 위험이 적고, 자산 가격이 상승이 예상된다"고 판단했다. 베세메 트러스트의 조 태니어스 선임 투자 전략가도 "올해 증시를 이끈 것은 결국 막대한 통화 완화 정책"이라며 "경제 지표가 아주 좋은 것은 아니지만, 무역 갈등 완화 등에 시장이 안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는 종목만 간다…잠자고 있는 현금, 증시 유입 될지 주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주식이 상승하는 대세 상승장은 아직 기대하기 힘들다. 경제가 전반적으로 좋아졌다고 보긴 힘들기 때문이다. 각국의 증시가 온도 차를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확실한 매수 주체 없이 슬금슬금 오르는 증시에 '광기 없이 주가가 오르고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미래 불확실성에 쌓여있는 현금도 '대기' 상태다. 현재 미국 머니마켓펀드(MMF)에는 약 3조4000억달러가 쌓여있다. 10년래 가장 높은 수치다. 이 돈이 주식시장에 유입된다면 큰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몰딘이코노믹스의 제러드 딜리안 전략가는 최근 블룸버그에 기고한 칼럼에서 "미국 증시에서 주로 거래되는 기업 수는 약 7000개에서 약 3500개로 최근 20년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며 "많은 돈이 더 적은 수의 주식을 쫓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특정 주식만 인기를 끌면 그 주식은 실제 기업가치에 비해 계속 비싸진다. 주도주의 가격이 너무 비싸 더이상 오르기 힘들면 증시 전반을 이끌기 어렵다.
딜리안 전략가는 "(주식에 대한) 수요를 예측하기는 어렵고,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이 시각이 크게 변화하면 증시는 결국 떨어지겠지만, 우리는 아직 거기에 오지 않았다"라며 아직 주식을 살 만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찰스 스왑의 수석 투자 전략가 리즈 앤 손더스도 중립 전략을 쓸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금을 갖고 있으라는 것도, 모든 것을 공격적으로 사라는 얘기도 아니다"라며 "변동성에 대비하면서 선호하는 주식을 더 사라"라고 말했다.
아시아 증시의 경우 차익 매물의 벽을 뚫을 지가 관건이다. 사상 최고치까지 올라온 미국 증시와 달리 중국, 홍콩, 일본 등은 예전 증시 수준을 회복 중인 단계다. 증시가 추가적으로 더 상승한다는 확신이 없으면 이익을 확정하고 싶어하는 차익 매물이 계속 나오게 된다. 자산운용사 에버브라이트 선의 케니 옌 전략가는 "중화권 증시가 특별한 방향 없이 거래되고 있다"며 "상하이종합지수는 3000선이 저항선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