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급등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는 가운데 미국 주요 석유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에너지 위기가 앞으로 더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백악관에 대책을 요구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불거진 위기이므로 해협을 다시 개방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입장이다.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엑슨모빌·셰브론·코노코필립스 CEO는 지난 11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진행된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 더그 버검 내무장관과 회담에서 이 같은 의견을 냈다. 이 자리에 트럼프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런 우즈 엑슨모빌 CEO는 "투기 세력이 (원유) 가격을 끌어올릴 경우 유가가 현재보다 높은 수준으로 오를 수 있고 원유 공급이 부족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마이크 워스 셰브론 CEO, 라이언 랜스 코노코필립스 CEO도 동의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가 급등, 원유 공급 부족 사태에 대비해 러시아산 원유 제재 완화, 원유 비축유 방출 등 대책을 세웠다. 베네수엘라산 원유 활용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업계 CEO들은 이 대책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평소 전세계 원유 물동량의 5분의1이 지나갔다. 이 곳을 다시 열어서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장기간 고유가가 지속돼 세계 경제에 부담이 가중되고 원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본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조치는 유가를 잡는 데 한계를 보였다. 이날도 국제 유가는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넘긴 가격에 거래됐다. 미국이 '이란의 석유 생명줄'로 불리는 하르그섬을 공격한 데 이어 추가 공격을 시사한 것도 유가를 끌어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SNS(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기에 유가가 오르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도 CEO들은 단기적으로는 수익 증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석유 산업과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반박했다.
월가의 시각도 석유업계와 비슷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주요 투자은행들은 호르무즈 봉쇄가 풀리지 않는 데다 하르그섬 공격이 이어지면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RBC캐피탈은 앞으로 3~4주 안에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8달러를 넘을 것으로 봤다. 이는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수준이다. 나아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47달러까지 상승했던 일이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