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벼랑 끝 몰리고도 미국과 마주앉은 이유[우보세]

윤세미 기자
2026.04.15 04:05
[편집자주]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11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미국-이란 평화 협상을 앞두고 이란 협상 대표 모하마드 바게르 칼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왼쪽)이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오른쪽)와 악수하고 있다./AFPBBNews=뉴스1

지난 주말 미국과 이란이 종전 협상을 위해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마주 앉았다. 이란의 위상이 전쟁 전과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불과 6주 전, 2월28일 미국이 이스라엘과 이란 공습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미국의 인식은 분명했다. 이란은 협상의 상대라기보다 압박하고 굴복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나온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란은 "테이블 위의 메뉴"에 가까웠다.

미국의 최대 압박 전략 아래 이란 경제는 오랜 제재에 시달렸다. 지난해 벌어진 12일 전쟁 당시 이렇다 할 반격도 하지 못해 사실상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단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설상가상 대규모 시위까지 벌어져 내부 붕괴마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과 달러 금융망, 동맹 네트워크를 모두 쥐고 이란을 어떻게 굴복시킬지 타이밍만 고르면 되는 구도였다. 지금은 다르다. 비록 미국이 압도적 우위라 하더라도 이란은 미국의 협상 상대다.

이란이 쥔 지렛대는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오가는 호르무즈 해협이었다. 이란이 최대 폭이 약 33㎞인 원유 수송로를 틀어쥐자 판이 뒤집혔다. 이란은 해협을 봉쇄한 채 어떤 배를 통과시키고 어떤 배를 막을지 선택했다. 통행료를 징수하고 우호국 선박을 우대했다. 원유 수급이 불안해지자 국제유가가 급등했다. 미국 주유소 기름값은 갤런당 평균 4달러를 넘어섰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 테이블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대응을 '초크포인트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초크포인트란 병법에서 '적은 수의 병력으로도 대군을 막을 수 있는 좁은 길목'을 뜻한다. 이 개념은 현대 경제 전쟁에선 글로벌 공급망의 필수 병목 구간으로 확장된다. 국가 간 상호의존성을 무기화하는 전략으로, 상대가 나를 공격했을 때 입을 타격이 너무 커서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드는 게 핵심이다.

지금껏 경제 전쟁에서 초크포인트를 가장 잘 활용했던 건 미국이었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와 실리콘밸리의 첨단 기술의 흐름을 통제하며 상대의 경제적 의존성을 무기화하며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점점 다극화하는 세계에서 미국도 초크포인트 공격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해엔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며 미국의 관세 전쟁에 정면으로 맞섰다. 중국은 전기차에서 미사일 유도장치까지 쓰이는 희토류 처리공정 90% 이상을 쥐고 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전쟁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중국과 '휴전'에 합의했다.

이제 세계는 강대국의 정의를 다시 물을 태세다.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페이프 시카고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이란이 미국,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4대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쳐 파장을 일으켰다. 패권의 기준이 경제·군사력 같은 국력의 총합이 아니라 초크포인트 장악 능력으로 바뀌고 있단 주장이다.

힘과 이익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초크포인트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는 이제 단순한 경제적 이득의 문제가 아니라 강대국의 메뉴가 될지, 강대국과 마주 앉을지를 결정하는 생존의 문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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