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서 내 카드가 결제됐다고" 카드복제 극성

"영국서 내 카드가 결제됐다고" 카드복제 극성

박재범 기자, 박종진
2011.04.07 16:03

내 카드가 '복제'되고 있다

# 회사 동료와 저녁 식사를 하던 회사원 박 모씨.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21시01분 9.6달러가 영국에서 승인됐다'는 카드사 문자였다.

스팸 문자 메시지로 생각한 박 씨가 휴대폰을 덮으려는데 곧 전화벨이 울렸다. 카드사로부터 온 전화였다.

"방금전 영국에서 결제하셨는데 고객님께서 직접 사용하신 게 맞나요." 박 씨는 당황했다. '서울 여의도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영국이라니…' 박 씨는 "영국에 간 적 없고 지금 서울에 있다. 카드를 빌려준 적도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카드사측은 "고객님 카드가 복제돼 사용된 것 같다. 일단 해외 사용부터 정지해주겠다"며 조치를 취했다. 박 모씨는 이튿날 은행을 찾아 카드 해지, 청구된 금액 지급 보류 신청 등의 추가 조치를 취했다. 그래도 내심 찜찜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 카드가 '복제'되고 있다. 내 지갑 속에 분명히 카드가 들어있는데 바다 건너에서 사용되는 마술같은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과거엔 중국이나 동남아 등 해외에서나 가능했던 카드 복제가 이제 국내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엔 해외 여행 때나 카드 복제가 이뤄졌는데 지금은 많은 '선수'들이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식점이나 주유소 등이 우범지대다. 결제를 위해 카드를 긁을 때 마그네틱 카드를 복제하는 수법이다. 순간 내 카드와 동일한 카드가 또 생기는 셈이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범인을 잡기 쉽지 않다. 복제 카드는 전 세계 곳곳에서 긁힌다.

업계에 따르면 카드사에 신고된 피해건수만 지난해 총 9000여건, 부정사용금액은 85억원에 달한다. 실제로는 더 많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매일 2건 이상이 발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카드사 당 최소 1000건이 넘는다는 얘기다.

그나마 최근들어 카드 결제 후 문자 메시지 서비스(SMS)를 받는 고객이 많아지면서 피해 정도가 줄었다.

복제된 카드가 처음 쓰일 때는 소액 결제다. 박 모씨 경우처럼 10달러 안팎이다. 실제 고객이 거래 정지를 하는지 여부를 시험하는 단계다. 이른바 '간 보기'다. SMS 서비스를 받는 이들은 복제 카드 가능성을 의심하지만 그렇지 않은 고객은 피해를 당하기 십상이다.

수백~수천달러의 결제가 이뤄진 카드 명세서를 받아본 뒤에야 카드사를 찾아다니며 사태 해결에 매달린다. 카드사 한 관계자는 "문자 서비스로 카드 사용 내역을 확인하는 게 1차 예방"이라고 말했다.

복제 카드가 많아지면서 카드사도 자체 시스템을 활용, 이상 거래를 감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KB카드의 경우 기존에 사용되지 않았던 지역이나 시간대에 카드 사용이 이뤄지면 곧바로 고객에게 알리는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피해를 입었을 때는 은행이나 카드사를 찾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하면 된다. 해외 사용의 경우 여권 등이 증빙 자료가 된다. 서류가 접수되면 은행이나 카드사는 지급을 보류한다. 이 때문에 복제 카드 피해 건수에 비해 실제 지급되는 금액은 많지 않다. 지급되더라도 카드사가 금액을 보전해주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현금 인출은 다르다. 현금서비스나 현금 인출은 피해 금액이 크다. 게다가 문제가 복잡하다. 현금 인출의 경우 '비밀번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밀번호 누출은 본인 과실로 이어진다. 비밀번호 누출 과정을 수사해 밝히기도 꽤 어렵다. 금융감독원 등에 제기되는 민원의 대부분도 이런 사례인데 고객이 이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반대로 고객이 현금 서비스를 받은 뒤 복제 카드 사용으로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님 카드를 쓴 뒤 '복제 카드' 문제로 돌리는 사례가 적잖다.

'복제 카드' 문제가 계속 제기되면서 금융당국도 고심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근본적 대책으로 'IC카드'(Integrated Circuit, 스마트카드)를 내놨다. 복제가 쉬운 기존 마그네틱 카드를 IC칩이 내장된 카드로 교체하는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이란 판단에서다.

이미 현금카드는 지난해 9월부터 IC카드로만 발급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신용카드는 내년 1월부터 적용된다.

문제는 단말기 보급이다. 현금카드가 주로 사용되는 자동입출금기(ATM)와 달리 신용카드를 읽어야 할 전국 모든 가맹점의 기존 단말기는 IC카드를 판독할 수 없다.

따라서 IC카드용 단말기로 교체해야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 가맹점 업주들이 단말기를 교체하는데 드는 비용은 1대당 15만원선이지만 세제혜택이나 보조금 지원 등 인센티브가 없다.

정부는 사적 재산인 단말기 교체에 예산 지원은 힘들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은 카드업계와 함께 지난해부터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단말기 교체를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6월말 기준 교체율은 25% 수준에 그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범죄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길은 기술적으로 복제가 불가능한 IC카드 뿐"이라며 "인프라를 확충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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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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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기자

재계를 맡고 있습니다. 개인이 잘되고 기업이 잘되고 그래서 나라가 부강해지는 내일을 위해 밀알이 되는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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