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 속 기차…明·淸 고택옆 애플매장 '中의 신천지'

마천루 속 기차…明·淸 고택옆 애플매장 '中의 신천지'

상하이(중국)=최병일 기자
2011.12.16 05:39
[편집자주] 상하이는 미래도시다. 중국의 개방을 대표하는 첨단 산업도시이자 중국의 미래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성장이 빠른 만큼 디테일은 부족하다. 급조한 느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또한 극복될 것이다. 19세기 작은 어항이었던 상하이는 이제 아시아를 대표하는 도시로 도약했다. 중국이면서 중국같지 않은 코스모폴리탄. 상하이에는 오늘도 새로운 성장을 향해 달리고 있고 독특한 열기와 활기가 가득한 곳이 되었다. 마천루와 뒷골목의 여운이 가득한 상하이 속으로 들어가 보자.

- 난징루·와이탄·위위안…현대·과거 오묘한 공존

- 상하이 임정 전시장, 세계 최대 개인정원까지

- 발길·눈길 옮길때마다 타임머신 여행하는 기분

▲화려한 쇼핑몰이 몰려있는 남경로
▲화려한 쇼핑몰이 몰려있는 남경로

아편전쟁 전까지 상하이는 그저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어촌에 불과했다. 전쟁에 패하면서 서구 열강에 의해 조차되면서 상하이는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변화를 겪게 되었다. 중국 역사 이전까지 없었던 기이한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서구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근대화가 이루어졌고 아직도 전통 가옥이 즐비했던 중국인 구역들은 서서히 새로운 세상에 편입되었다.

상하이의 놀랄만한 발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상하이 제일의 번화가 남경로(난징동루)다. 서울로 치면 명동이다. 비가 오는 날인데도 거리는 사람의 물결로 가득하다. 이곳은 드라마 아이리스의 촬영지로 유명하기도 하다. 상업과 패션의 중심이기도 하기에 그야말로 젊은이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거리의 중심에는 미니기차가 운행되고 있다.

최신의 쇼핑몰과 명품들이 가득하고 자본주의의 상징인 애플 매장에는 그야말로 발 디딜틈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하다. 상하이의 변화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장소는 바로 신천지(新天地)다. 중국어로 '신티엔띠' 상하이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찾는 곳이다. 지하철 신천지역에 내리면 펼쳐지는 곳이 바로 신천지다.

새로운 하늘과 땅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옛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곳이다. 홍콩자본인 루이안 그룹이 1999년 착공해서 불과 3년 만에 완공했다. 원래 신천지는 프랑스 조계지였다. 조계지 안에는 일명 스쿠먼 양식으로 불리는 부유층들의 건축양식과 외국의 건축양식이 결합하여 독특한 양식으로 재탄생했다.

남경로와 신천지가 상하이의 미래라고 한다면 남경로 근처의 와이탄은 아직도 남아 있는 중국역사의 상처들이자 오래된 기억들이다. 황푸강을 따라 강 서쪽에 위치한 와이탄에는 조계시대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온다. 1920년대에 지어진 중국은행 상하이 분점 장제스 총독의 결혼식이 열려 유명해진 팰리스 호텔 마치 영국의 빅벤을 연상시키는 상하이 세관이 연달아 펼쳐진다.

와이탄은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하다. 밤이 되면 마치 화장을 한 아가씨의 모습처럼 우아한 변신을 한다. 고색창연했던 건물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부신 불빛을 쏘아대고 상하이의 상징인 동방명주는 오만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압도한다.

남경로 근처에는 야경으로 유명한 와이탄이 있다. 황푸 강을 끼고 강 서쪽에 위치한 와이탄은 상하이의 주요한 건물과 야경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홍콩의 눈부신 야경을 대표하는 신세계 건물 뒤 사랑의 거리에 종종 비교되는 이곳은 상하이가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상해임시정부의 유물들
▲상해임시정부의 유물들

상하이 신천지에는 한국인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구심이었던 상해임시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상해임시정부는 신천지 근처 후미진 골목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광복을 맞이하기 위해 피와 땀을 흘렸다. 김구선생을 비롯해 독립투사들이 어떻게 투쟁해왔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전시장은 묵직한 감동을 전해 준다.

신천지 근처 루쉰공원 안에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다. 윤 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던진 곳이 바로 그곳이다. 중국의 실천적 지식인 루쉰을 기리는 공원과 윤봉길 의사의 의거지가 같은 곳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일이다.

▲신천지 근처의 예술촌
▲신천지 근처의 예술촌

신천지 근처에 또 하나 유명한 곳이 바로 'M50 예술촌'원래는 1930년대 지어진 공장지대였던 모간산루 50번지를 예술인들의 공간으로 내주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갤러리나 예술 관련 사무소만 있다 점차 이름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이곳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주변의 카페촌과 함께 예술촌은 상하이의 문화를 대변해 주는 명물이 되었다.

신천지나 남경로가 중국의 오늘을 이야기 한다면 상하이에 남아 있는 가장 중국적인 풍경은 예원이다. 세계 최대의 개인 정원인 예원을 보려면 먼저 예원상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전통적인 장신구나 골동품 가게를 지나야 한다. 마땅한 표지판조차 제대로 붙어 있지 않아 한참을 헤메이다 골목을 돌아서면 일대가 갑자기 명·청시대로 되돌아 온 듯 고색창연한 건물들로 뒤덮힌다.

▲예원 구곡교에서 본 명청시대의 건물들
▲예원 구곡교에서 본 명청시대의 건물들

예전에는 어엿한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용도가 바뀌어 주로 레스토랑이 된 건물들 사이로 구곡교가 보이고 구곡교를 지나면 예원이 나온다. 예원은 세계 최대의 개인정원이다. 예원은 크기만 해도 거의 2만 평의 면적에 건물만 40채 연못 10개를 품고 있다. 명나라 반윤단이라는 사람이 1559년에 조성을 시작해 완공하는데 무려 20여년이 걸렸다고 한다.

▲예원의 아름다운 정원 모습
▲예원의 아름다운 정원 모습

예원은 반윤단의 아버지 반은을 기쁘게 하기 위해 만들었다. 예원이라는 뜻도 '부모를 즐겁게 하는 정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반 씨의 효성이 얼마나 지극한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애석하게도 완공이 되었을 때는 이미 아버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반윤단 자신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예원의 모습을 몇 년 즐기지도 못하고 병으로 죽고 말았다. 돌보는 주인이 없다 보니 예원은 상당 기간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태평천국의 난이 이어졌을 때는 황군이 점령하다 일본군에 의해 손상을 당하는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후 예원은 상하이시 정부에 의해 보수되어 1961년부터 일반에 개방되었고 지금은 국가 단위의 문화재가 되었다. 예원은 설계가 정교하고 구도가 섬세하며 한적하면서도 수려하다 하여 옛 사람들이 '동남 제1 명원(유명한 원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과연 명성에 어울리게 정원은 독특하다.

마치 미로찾기를 하듯이 곳곳을 돌아보면 정자 누대가 엇갈려 있기도 하고 문을 거쳐 또 다른 문이 나오기도 한다. 문을 통과할 때마다 다른 세상이 열려는 것처럼 전혀 다른 풍경이 연출된다. 명·청대의 가구 점토인형 명필이 쓴 글씨와 그림 등이 어울려 중국 전통 문화 예술의 정수가 모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돌아서 나올 때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문을 돌아 나오면 조금 전에 본 풍경이 펼쳐지고 다시 다른 문으로 나오면 아까 문과 연결되고 만다. 예원을 찬찬히 살피려면 족히 2~3시간이 걸린다. 서양인들은 기이한 정원에서 발길을 떼지 못하고 구석구석 돌 하나까지도 눈에 새기고 있다.

상하이는 그런 곳이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이내 새로운 세계에 빠져 허우적대는 곳.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뒤섞여 있는 영화같은 도시. 한번 들어가면 쉽사리 다른 문으로 건너지 못하는 묘한 매력이 도시를 감싸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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