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가는 시간 계절마다 멈추어 버린 향수의 고장 '경북 의성'

◆아날로그의 감성 대장간과 성냥공장을 가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든다. 시골 읍내를 찾아가보아도 비슷한 풍경과 건물 프랜차이즈가 지배하고 있다. 추억을 공유할만한 장소가 점점 사라져 간다. 한미한 시골에서나 느낄 수 있는 뭉글뭉글한 밥짓는 연기도 돌담벽도 근대의 풍경도 사라져 버렸다.
의연하게도 경상북도 의성은 추억의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다. 아직도 농기구를 땅땅 망치로 두들기는 매질과 담금질 풀무질을 해서 화덕에서 농기구를 뽑아내는 대장간이 있고 일제시대 기계로 솜을 트는 목화솜 집이 있다.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을 사람이 살아 있는 공간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의성대장간의 최상길(73)씨는 연신 매질을 하면서도 예전보다는 힘에 부치는 듯 힘겨워 한다. 대장간만 시간이 흐른 것이 아니라 대장장이의 육신에도 똑 같이 시간이 흘러 버렸다. 장날에만 문을 열고 소일거리 삼아 일을 하지만 그마저 찾는 이들도 점차 줄어 들었다.
낫 하나 만드는데도 수없이 매질을 하고 10번도 넘게 화덕에 들어가야 겨우 제 형태가 나오는데 가격이래야 1만원도 안하니 요즘 셈법으로 따지면 밑지는 장사인 셈.
솜틀집은 아예 먼지 속에 잠겨버렸다. 가끔씩 목화솜의 보드라운 느낌을 잊지 못한 '옛날 사람들'이 주문을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솜트는 사람은 가뭄에 콩나는 듯 줄었다.

의성에는 우리나라의 하나밖에 없는 성냥공장이 남아있다. 요즘은 불을 피울 때 대부분 라이타를 이용하지만 20년 전만 해도 곽 성냥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니 이제 성냥은 시간의 뒷 켠으로 물러나버렸다. 성냥개비를 들어 탁하고 치면 알싸한 향기가 코 속으로 후두둑 파고든다.
우리나라에 성냥 제조공장이 처음 생긴 곳은 1885년 일본인과 외국인이 합작으로 설립한 것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1970년대는 성냥공장이 호황을 이루었다. 자동화 설비를 갖추고 수출까지 했다. 연 매출 6억원에 종업원이 많을 적에는 200여명이 넘을 정도 였다. 이후 일회용 가스라이터가 출현하면서 성냥공장은 사양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광주 공작 성냥 천안 조일성냥(유엔성냥) 영주 돈표성냥 대구 비사표 성냥 등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의성의 성냥공장은 성광성냥공업사가 전부다. 1954년 세워졌으니 햇수로 60년 가까운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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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무에 황 심지가 전부인 성냥의 제조 공정이 얼마나 복잡하랴 생각하면 오산이다. 성냥에 쓰일 이태리포프라나무를 돌려깍아서 작은 개비로 만들고 불이 잘 붙도록 쪄내는 과정이 시작단계다. 유황과 파라핀을 섞어 점화력을 높이고 나무개비에 황을 입히는 과정을 거쳐야 겨우 성냥개비가 탄생한다. 공장 다른 창고에는 성냥개비가 들어갈 성냥곽을 만드는 공정이 이루어진다.
종이를 각각의 용도에 맞게 크기별로 만들어낸다. 휴대하기 편하게 만든 작은 성냥곽 주로 집안에서 석유곤로나 촛불을 켤 때 사용했던 큼지막한 통성냥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성냥의 쓰임새가 줄어들면서 요즘에는 일주일에 한번 기계를 돌리기도 힘이 든다. 아직도 성냥을 쓰는 곳이라고 해야 촌 마을에서나 있는 다방 아니면 절집 뿐이니 그야말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간다는 말이 적합할 것이다.
성광성냥의 손진국 사장(75)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성냥공장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성냥박물관이나 학생들을 위한 역사교육 혹은 학습체험관으로 남아 성냥이 가지고 있는 한 시대의 추억을 오랫동안 기억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공룡발자국과 전통마을의 기묘한 조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동네답게 의성에는 먼먼 옛날 사람보다 먼저 터를 잡고 살았던 공룡들의 놀이터였다. 의성군 제오리의 공룡발자국은 사실 확 들어오지는 않는다. 입체감을 주기 위해 발자국마다 황토를 입혔지만 거대한 초식 공룡들이 돌아다녔다는 사실은 그저 머리속에서 공상처럼 맴돌 뿐이다.
지반의 침하와 융기를 거듭하다보니 평평했던 땅이 마치 보드 연습장처럼 경사면으로 올라서버려 더욱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모두 4종류의 공룡발자국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발굽울트라룡 발톱고성룡 발목코끼리룡 등 3종류의 초식공룡발자국과 육식공룡인 한국큼룡발자국이 그것. 공룡들은 중생대 백악기인 1억 1500만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니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전에 있었던 생명의 흔적들이다.
공룡만큼 오래되지는 않았어도 근방에는 신라 경문왕릉이 있고 가야국 작은 부족국가였던 조문국의 무덤군들이 260여기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지역답게 의성 곳곳에는 운치있는 한옥들이 즐비하다. 대표적인 곳이 산운마을과 사촌마을이다. 사촌마을은 안동김씨와 풍산류씨의 집성촌.작은 마을에서 대과에 급제한 이가 13명이고 소과에만 31명이나 되었으니 당시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마을 중심에 있는 만취당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가의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다.
가을이라 조금은 쓸쓸하지만 마을입구의 사촌가로숲은 여름이면 찾는 이가 줄을 이을 만큼 풍성한 아름다움을 준다.

사촌마을에서 30분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산운마을은 사촌마을보다 더 고즈넉하다. 사촌마을이 선비들의 청정한 느낌이 든다면 산운마을은 보다 정겹다.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산이 보이고 정겨운 실개천과 들판이 있다. 오죽하면 구름이 감도는 마을이라 하여 산운마을이라 했을까. 대감마을로 불리는 전통반촌으로 영천 이씨의 집성촌이 산운마을은 전통가옥이 10여채 정도여서 그리 규모는 크지 않다.
마을의 중심은 소우당 건물. 소우 이가발이 지은 저택은 고졸한 맛이 있다. 별당 뒤편 정원에는 떨어져 내린 모과와 함께 뛰어난 운치를 자랑하는 정원이 있다. 영남에서 제일간다는 정원은 한국식 전통 정원의 미학을 그대로 드러낸다.

◆마을을 물들인 붉디 붉은 산수유
도랑에도 논에도 산에도 요즘 의성은 산수유가 한창이다. 산수유가 지천이어서 붙여진 산수유 마을에는 가지마다 붉은 열매가 강렬하게 눈 속으로 파고든다. 산수유하면 모 식품 회사 사장이 "산수유 참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라며 익살스럽게 되뇌이는 CF가 먼저 떠오른다. 산수유마을도 그러하다.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계절의 끝물이어서 분명 주변은 황망하고 썰렁하기 까지 한데 산수유 열매가 마을을 뒤덮으니 풍경의 아름다움을 필설로 다루기가 민망해진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사실 의성 화전리는 전국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이다. 최대 군락지 답게 전국 생산량의 4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산수유하면 경기도 양평이나 이천 혹은 전라남도 구례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상 의성이야 말로 산수유의 본토인셈이다.
산수유의 꽃말은 '영원불멸의 사랑'이다. 지고한 꽃말처럼 산수유는 대를 이어 의성의 산하를 물들여왔다. 산수유 나무 아래 사람들은 한창 사과수확에 빠져 있다. 붉은 색 사과와 산수유는 왠지 모르게 조화를 이루는 듯하다.
문의:의성군청 문화관광과(054-830-6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