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일몰 항목 103개 중 폐지는 24개 뿐
"비과세·감면에 대해 일몰 도래시 폐지하는 방안을 그동안 매년 추진했지만, 과연 제대로 됐는냐? 국회 반대 때문에 안 되지 않았느냐? 그럼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비과세·감면 축소'는 정부의 묵은 숙제다. 그런데도 그동안 성과는 별로 없었다. '일몰시 전면 폐지'에 대해 정치적 반발이 워낙 강해서다. 정부가 비과세·감면에 대한 단계적 감축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실패한 '일몰시 전면 폐지' 정책=현재 우리나라 국세의 비과세·감면액은 연간 30조원. 비과세·감면 항목만 약 170가지다.
지난해의 경우 무려 103가지 비과세·감면 조항의 일몰이 도래했다. 그러나 실제 폐지된 항목은 24개에 불과했다. 79가지 비과세·감면 항목은 일몰이 연장되며 생명을 유지했다. 세제당국인 기획재정부가 '일몰시 폐지'라는 원칙을 들이댔는데도 그랬다. 지난해 8월 세제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시점을 전후해 온갖 정치적 압력이 작용한 결과다.
예컨대 농협 등 조합법인에 예치된 3000만원 이하 예탁금에 대한 비과세 혜택의 경우 재정부는 폐지를 추진했지만 결국은 무산됐다. 세제혜택이 일시에 사라질 경우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게 되는 이해당사자들과 이들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의 입김이 작용한데 따른 것이다. 세제혜택을 서서히 줄여가는 방식 등으로 정치적 반발을 최소화하는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3년간 일괄 폐지 땐 최대 47조원"=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말 대선을 전후해 임기 5년간 각종 복지 공약 이행에 필요한 135조원 가운데 약 48조원을 비과세·감면 정비 등 세제 개혁을 통해 확보하겠다고 공언했다. 내년도 세법 개정안부터 적용한다고 가정할 때 향후 4년간 연간 12조원씩을 비과세·감면 등 세제개편으로 줄여야 한다.
감사원이 최근 재정부를 상대로 비과세·감면 제도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것도 정부의 비과세·감면 정비 정책을 우회지원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감사원은 25일부터 4월5일까지 2주간에 걸쳐 재정부를 상대로 비과세·감면 제도 운영에 대한 특정감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감사원이 비과세·감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해주면 국회에서 비과세·감면 축소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마침 비과세·감면액이 큰 상위 10개 항목 가운데 6개가 2014~2015년 일몰을 맞는다. 올해 예상 감면액을 기준으로 △연구·개발(R&D) 투자세액공제(2조7000억원) △임시·고용창출 투자세액공제(1조7000억원) △농·어업용 석유류 간접세 면제(1조6000억원) △신용카드 소득공제(1조5000억원) △농축임업용 기자재 부가가치세 영세율(1조3000억원) △중소기업 특별세액 감면(1조2000억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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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연구원은 향후 3년간 일몰 도래하는 비과세·감면 제도를 모두 폐지할 경우 2014~2017년까지 발생할 추가 세수확보 가능 규모는 최대 42조6000억~46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문제는 이 가운데 대부분이 중소기업, 서민, 농·어민 등에게 돌아가는 세제혜택이라는 점이다. 연구원에 따르면 연간 비과세·감면액 가운데 약 57%에 해당하는 17조원 가량이 중소기업·서민·중산층 지원용으로 분류됐다. 중소기업과 서민 등을 대상으로 한 비과세·감면을 어느 정도까지 남겨둘지 박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이 요구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