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부터 만화책을 즐겨보던 김모씨(29)는 최근 만화책 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만화 대여점들이 언제부턴가 가격을 올리더니 이제는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한 것. 김씨는 새 만화책을 구매해 보기는 부담이 돼 결국 인터넷에서 불법스캔한 만화를 다운받아 보기 시작했다.
#만화를 즐겨보던 A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즐겨보던 만화책이 갑자기 나오지 않았다. 서점 주인에게 이유를 물으니 만화사가 부도됐다고 했다. A씨에게 그 만화는 영원히 '미완결'이다.
#류성윤씨(25)는 지난 2달간 500권 넘는 만화책을 샀다. 모두 중고 만화책. 500권을 사는데 권당 1000원 정도씩 50만원 가까이 들었다. 류씨는 나중에 만화책을 다시 중고로 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추억의 만화방이 사라지고 있다. 불법스캔으로 코믹스 만화산업이 불황을 겪으며 만화방과 만화대여점들이 잇따라 폐점하고 있다. 하지만 중고서점을 중심으로 한 중고 만화책 거래는 활기를 띠고 있다.
◇사라져가는 만화방
27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만화산업백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년 동안에만 600여개가 넘는 점포가 문을 닫았다.
만화방이 문을 닫는 이유는 수익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화대여점은 업체당 평균 1년 매출액이 200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매출액 중 만화책구입비와 점포임대료 등을 내고나면 실제 영업주의 손에 들어오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국 만화산업은 1960년대 만화방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만화방을 중심으로 시작된 만화산업은 계속해서 성장해오다 1990년대 절정을 맞았다. 이후 인터넷의 보급으로 만화 불법스캔이 퍼지면서 급격한 하락세를 그렸다.
변화는 전체적인 만화산업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2010년 인기만화 ‘열혈강호’의 작가 양재현은 권당 10만권이 팔리던 책들이 이제는 3만5000권도 팔기 힘들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드라마로 제작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만화 ‘야뇌 백동수’는 결국 지난해 연재를 중단했다.
출판되는 만화 단행본의 종류도 2005년 4558종에서 2011년 3693종으로 900여종 가까이 감소했다. 만화사마다 2~3권씩 발행했던 만화잡지는 수년간 휴간과 폐간을 거듭하다 최근에는 5종정도만 남았다. 이것도 2012년에는 총 매출액이 7억8000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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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업계는 상황에 맞춰 만화책 가격을 계속 올렸다. 2005년 평균 4200원이었던 단행본가격이 2011년에는 6500원까지 상승했다.
만화책 가격상승과 맞물려 불법스캔을 찾는 이들은 늘었다. 만화저작권보호협의회에서 지난해 단속한 불법스캔 건수는 1만5592건. 불법스캔으로 구매자가 줄면서 코믹스 출판시장이 작아지고 만화책의 가격이 다시 오르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국내최대 만화총판점 ‘북새통’의 박회순씨는 “90년대에 비해서 80% 가까이 만화출판시장이 작아졌다”며 “인터넷 공유 사이트에 올라온 불법스캔 만화 타이틀이 우리가게 보다 많을 것이다”고 했다. 북새통은 6만~7만권의 만화책을 보유하고 있다.
박씨는 “홍대 주변에 많이 있었던 만화방이나 만화서점 모두 문을 닫았다”며 “저녁시간이면 학교일과를 마친 학생이나 퇴근한 직장인들로 붐벼야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만화산업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만화 중고 시장은 호황
만화책을 즐기던 이들이 눈을 돌린 건 중고 시장. 옥션 중고장터에는 지난해 5월 2만5000개였던 만화책 상품이 현재는 5만여개 넘게 등록돼있다. 1년새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최근 ‘북오프’나 ‘알라딘 중고서점’같은 중고서점들에서도 중고만화책 거래가 활발하다.
류성윤씨는 2달 동안 중고만화책을 500권 넘게 구입했다. “유명하거나 희귀한 만화책은 바로 되팔릴 정도로 요즘 중고시장이 활발해졌어죠. 요즘은 만화책을 중고로 사서 본 뒤 다시 중고로 되파는 것이 인기입니다"
이 같은 변화는 중고서점 측도 감지하고 있다. 알라딘 측은 “처음 중고서점을 운영할 때는 만화책이 팔리지 않을까 보수적으로 만화책 매입을 했다”며 “하지만 최근 2~3년간 만화책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 매입량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올 초에 문을 연 부천점은 복층으로 따로 만화섹션을 만들어 놨다.
김주희 알라딘 신촌점 부점장은 “만화책이 전체 중고도서 판매에서 10% 정도는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며 “한번에 400권 가까이 판매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알라딘에서는 정가의 약 20%의 가격으로 중고만화책을 사들이고 있다.
만화책 중고시장이 활기를 띤 이유에는 여러 가지 있다는 평가다. 우선 만화책 가격의 상승. 최근 일반 만화책의 가격이 평균 5000원대 이상을 유지하면서 구매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중고시장을 찾는다는 해석이다. 중고서점은 권당 1000~1500원에 만화책을 팔고 있다.
주변에서 만화를 빌려볼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 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다. 90년대 만화책을 즐긴 중·고등학생들이 20~30대가 돼 만화책을 즐기려고 해도 즐길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구매력을 갖춘 이들이 중고시장에서 만화책을 찾고 있는 셈. 실제 중고서점에서 만화책을 찾는 사람은 대부분 20~30대다.
추억을 찾아 만화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몇몇 만화책들은 원가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되고 있다. 90년대 최고의 인기 만화였던 ‘슬램덩크’의 경우 최상급 31권 한질이 2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당시 만화책 가격이 2500원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2배 이상 올랐다.
10년 넘게 만화책을 모아왔다는 장하늘씨(25)는 “예전 추억을 찾아 중고 만화책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 과거에 나온 해적판도 인기가 많다”며 “애장본이 따로 나와도 그때의 표지와 감성을 생각하며 예전 판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장씨는 중고매장에서 권당 1000원에 샀던 만화책을 5년 뒤에 1만원에 판매한 적이 있다고 했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당시 “만화산업에서 만화문화산업으로 개념전환을 위해 다양한 만화문화 인프라의 확대가 필요하다”며 “만화다양성의 확대와 창작·제작·유통·소비의 선순환구조 구축을 통한 만화생태계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