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팩트]조세피난처 설립기업은 모두 '세금도둑'?

[뉴스&팩트]조세피난처 설립기업은 모두 '세금도둑'?

오동희 기자
2013.05.28 06:10
[편집자주] 보도되는 뉴스(NEWS)는 일반 시청자나 독자들에게는 사실(FACT)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뉴스가 반드시 팩트가 아닌 경우는 자주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머니투데이 베테랑 기자들이 본 '뉴스'와 '팩트'의 차이를 전하고, 뉴스에서 잘못 전달된 팩트를 바로잡고자 한다.

지난 26일 한 재벌 관련 조사 사이트는 조세피난처로 알려진 케이먼군도 등 9개 지역에 24개 그룹(자산 1조원 이상 민간그룹)이 둔 현지법인의 수가 125개에 달하고, 이들의 자산 총액은 총 5조6900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또 최근 CJ 그룹 탈세 조사와 2011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입수한 조세피난처의 페이퍼 컴퍼니 설립 대행사인 PTN과 CTL의 내부고객정보데이터 분석 결과가 공개되면서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법인을 보유한 기업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ICIJ가 입수한 자료에는 170개국 13만 명, 12만 개의 페이퍼 컴퍼니 중 한국인이 245명이 있다고 보도됐다.

소위 조세 회피지역이라고 불리는 곳에 법인을 설립한 곳은 모두 탈세를 위해 설립된 곳일까. 또 조세회피 지역으로 분류된 지역이 바르게 정의된 것일까.

◇조세 회피지역 법인은 모두 페이퍼 컴퍼니인가=재벌 조사사이트라는 곳의 통계에는 국내를 대표하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이 탈세를 목적으로 해외에 은밀히 현지법인을 설립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 조세피난처에 125개 법인 숨겨 놨다'는 말로 의혹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의 현지법인은 소위 말하는 페이퍼컴퍼니(직원 없이 서류로만 존재하는 기업)가 아니라는 게 해당 업체들의 얘기다. 삼성전자의 경우 1970년대 첫 TV 수출 지역이 파나마이며, 현재도 파나마 현지법인은 판매법인으로써 활동하고 있다.

LG전자도 마찬가지. 현지에 판매법인과 컨설팅법인, 콜센터 등 3개의 법인을 두고 있으며, 모두 정상적인 현지법인으로 활동 중이다. 현대차 파나마 법인도 마찬가지다.

또 해운업체나 투자기업들의 경우 외국 기업과의 합작이나 해외 부동산 투자 등에서 설립과 청산 절차가 간소한 이 지역에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일부 탈세를 목적으로 불법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지만 '125개 기업이 5조7000억원'을 탈세를 위해 조세회피지역에 숨겨놓은 것과 같은 지적은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하는 곳까지 도매금으로 넘기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OECD 프로그레스 리포트 2012.
OECD 프로그레스 리포트 2012.

◇파나마가 조세 회피지역이라고?=2009년 4월 2일에 영국 런던에서 열린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G20 정상회의에서 국제적으로 합의된 세금기준을 따르지 않는 국가를 '조세피난처 관련 블랙리스트 국가'로 정의해 규제에 힘을 쏟았다. OECD는 당시 프로그레스 리포트(Progress Report: 경과보고서)를 통해 해당국가의 명단을 공개했다.

지난 26일 재벌관련 사이트에서 발표한 9개 지역인 케이먼군도를 비롯해 버진아일렌드, 파나마, 마셜군도, 말레이시아 라부안, 버뮤다, 사모아, 모리셔스, 키프로스 등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곳이었다.

하지만 이 지역들 중 가장 많은 해외법인이 설립돼 있다고 조사된 파나마를 비롯해 버뮤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마샬 군도, 모리셔스, 사모아, 말레이시아 등은 2012년 12월5일부로 OECD의 블랙리스트에서 이름이 빠져 '화이트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유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세금표준을 구현하는 국가'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이들이 포함된 화이트리스트에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중국 등 90개국이 있다. 이들 지역에 단순히 법인을 설립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일각에서는 이들 기업이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기업을 마치 숨겨놓은 것처럼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의 기업들은 해당법인 설립 현황과 자산 규모 등을 누구나 볼 수 있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지하고 있다. 이번 재벌 관련 사이트라는 곳의 발표 자료도 이 공시자료를 모은 것에 불과하다.

탈세와 불법을 차단하는 노력은 국제적으로 지속돼야 하고, 이를 공개하는 것도 꺼려서는 안된다. 하지만 옥석을 가리지 않고 인기영합적으로 무분별하게 공개해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될 일이라는 게 재계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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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 기자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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